박모(72)씨는 건강검진을 받다가 오른쪽 폐 위쪽에 작은 혹이 발견돼 폐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받아야 했다. 검사 결과 지름 1.5㎝의 종양이 확인돼 조직 검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폐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암 덩어리를 제거하면 완치가 가능한 초기 단계였다. 성숙환 서울성모병원 폐암센터 교수는 “폐암이 초기이고 종양 위치가 늑막에 가깝기 때문에 수술 부담이 적고 흉터도 작게 남는 흉강경 수술이 가능하다”고 위로했다. 수술은 2시간 반 만에 끝났고, 박씨는 수술을 받은 뒤 3일 만에 퇴원했다.
폐암 생존율 16.7%에 그쳐…조기 진단이 관건
최근 들어 고령인의 폐암 발생률이 크게 늘고 있다. 2007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에게서 폐암이 위암 다음으로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만 놓고 보면 폐암이 암 발병률 1위를 차지했다.
폐암은 다른 암에 비해 치료 결과가 나쁜 ‘독한 암’이다. 폐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불과 16.7%로, 전체 암환자의 5년 생존율 57.1%에 비해 월등히 낮은 수치다. 이처럼 폐암 치료결과가 나쁜 것은 조기에 발견되는 비율이 낮기 때문이다.
전체 폐암의 80~85%를 차지하는 비(非)소세포 폐암(암세포 크기가 소세포 폐암보다 큰 폐암)은 1기에 발견할 경우 5년 생존율이 70%를 넘는다. 2기에만 발견해도 5년 생존율이 50%에 달한다. 하지만 암세포가 폐 밖으로 전이된 4기에 발견하면 생존율이 5% 이하로 급격히 떨어진다. 그래서 폐암은 다른 어떤 암보다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폐를 검사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가슴 X선 검사다. 하지만 이 방법은 폐암을 조기에 진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폐는 인체구조상 4분의 1 정도가 심장과 횡격막 등에 의해 가려져 있어 가슴 X선 촬영으로는 상태를 정확히 검진하기 어렵다. 특히 폐암 조직은 크기가 최소 2.5㎝는 돼야 보이므로 X선 촬영에서 발견될 정도면 이미 손쓸 수 없는 단계일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X선 촬영 대신 지름 3~4㎜ 크기의 초기 암까지 잡아낼 수 있는 저선량 흉부 CT가 이용된다. 저선량 흉부 CT는 방사선량을 일반 CT의 6분의 1 정도로 줄인 진단기기다. 기기 자체가 나선형으로 움직이면서 찍기 때문에 3차원 입체 영상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환자가 숨을 들이쉰 순간 폐의 모든 부분을 재빨리 연속 촬영하므로 검진 시간도 10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성 교수는 “폐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생존율이 70%를 넘지만 시간을 지체할수록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지므로 장기간 흡연한 사람을 비롯해 폐암 고위험군이라면 1년에 한 번 정도 저선량 흉부 CT 촬영을 권한다”고 말했다.
흉강경 수술, 조기 폐암 잡는 ‘1등 공신’
조기 폐암의 생존율이 높아지는 것은 수술법이 진화한 덕분이다. 최근에는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암세포만 떼내는 흉강경 수술이 주목을 받고 있다. 흉강경 수술은 가슴을 크게 여는 기존 개흉술과 달리 겨드랑이 아래쪽 3곳을 절개한 뒤 카메라와 수술기구를 넣고 모니터를 보면서 수술하는 방식이다.
성숙환 교수가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로 재직하던 2003년 국내 최초로 흉강경 수술에 성공한 이래 2007년까지 총 5년 동안 흉강경 수술을 받은 환자 133명과 개흉술을 받은 환자 202명을 비교해 본 결과, 흉강경 수술의 생존율이 92%로 개흉술(89%)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입원기간도 흉강경 수술은 6일로, 개흉술의 9일에 비해 짧다. 성 교수는 “흉강경 수술은 복강경 수술과 비슷한 시기에 도입됐으나 안전성 등의 문제로 복강경만큼 널리 활용되지 못했다”며 “하지만 이제 초기 폐암을 치료하는 데에는 안전성과 치료 효과가 좋은 흉강경 수술이 최선책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흡연이 가장 큰 원인, 순한 담배도 위험
폐암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원인 가운데 주범으로 꼽히는 것은 흡연이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남성의 폐암 사망률이 여성보다 4배 이상 높은 것이 그 방증이다. 담배만 끊어도 폐암 발병위험을 80~90% 정도 낮출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담배는 그야말로 유해물질 덩어리다. 담배 연기에는 4,000종이 넘는 독성 물질이 들어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방향족아민, 니트로사민, 방향족탄화수소 등 40여 가지의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 이 물질들이 DNA 등에 작용해 유전자 변이를 유발하면서 폐암을 일으키는 것이다.
흡연량과 흡연기간이 길수록 폐암 발병률도 함께 높아진다. 하루 반 갑에서 한 갑씩 흡연하는 사람은 담배를 피우지 않은 사람보다 폐암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남성은 14.6배, 여성은 8.3배나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예전에는 폐암 가운데 비소세포폐암의 일종인 편평상피세포암(암세포가 편평한 기왓장이나 생선비늘처럼 넓게 퍼진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폐암 발생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이나 담배를 피우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선암 발생률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흡연을 전혀 하지 않은 법정 스님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경우에는 간접 흡연이나 음식을 조리할 때 나오는 연기, 순한 담배를 피울 때 연기를 깊이 들이마시는 습관, 그리고 라돈가스나 석면 등이 원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20년 이상 흡연을 했거나 먼지가 많은 환경에서 오랫동안 일한 폐암 고위험군은 매년 1회 저선량 흉부 CT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성 교수는 “정부가 위암과 간암, 대장암, 자궁경부암, 유방암 등 5개 암에 조기 검진비를 지원하는 국가 암 검진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데, 최근 폐암의 발생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폐암까지 지원이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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