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하지만 돈 없는 부모를 만나면 좋은 대학 가기도 힘든 세상이 된 듯 하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력으로 대물림된다는 이야기다.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에 전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자칫 위험한 함정에 빠뜨릴 수도 있기에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비슷한 부자 부모지만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다른 경우가 바로 부의 학력 대물림 현상이라는 사태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모의 경제력을 배경삼아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참으로 한심스럽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자생력을 서서히 잃어간다는 사실이다. 부모가 어렵게 구해온 과외 선생님이라 할지라도 그저 자신을 괴롭히는 또 다른 귀찮은 존재로만 여긴다. 남들에게는 소중한 배움의 기회지만 그냥 하기 싫은데 억지로 시킨다는 반응을 보일 뿐이다. 갈수록 불붙고 있는 사교육 더 시키기 경쟁으로 인해 부모들은 등골이 휘지만 아이들은 그저 공부가 귀찮다는 반응이 더 강하다. 반면에 드물지만 이미 명문대 합격이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도 노력을 멈추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그중 한 학생에게 이유를 확인해보니 지금 실력으로도 충분하지만 앞으로 더욱 노력하지 않으면 대학 등록금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부모의 이야기를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농담 삼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대학에 합격했는데 등록금 안 내주시겠니 했더니, 아이는 펄쩍 뛰면서 자기 부모님을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한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그냥 자신에게 뭔가를 해주시는 경우는 절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장남감은 말할 것도 없고 참고서도 그렇고 학원도 그렇고 자신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절대 알아서 먼저 해주시는 경우가 없었다고 한다.
평소 아이가 부모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부모는 부모일 뿐이며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아이들을 보면 분명 다르다. 무슨 일만 생기면 부모에게 의존하려는 생각을 가진 아이들과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 보통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희망, 그리고 의욕이 있기 때문에 성적이 아무리 나빠져도 곧바로 어렵지 않게 문제를 해결한다. 평소 자립심을 길러준 부모 밑에서 그렇게 성장한 것이리라. 반대로 자신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서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부모들의 아이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아이가 직접 해야 할 것까지 일일이 챙겨주며 아이의 자립심 발달을 방해한다. 결국 아이를 야생의 세계에서 떼어내어 우물 안 개구리나 온실 속의 화초로 변질시키고 만다.
자립심이 부족한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자주 피곤감을 호소한다. 언제까지 의존적인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시간이 갈수록 힘이 든다고 하소연한다. 결국은 아이 탓을 하게 되는데,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원래 아이가 야물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조금만 확인해보면 부모가 아이의 자립심을 퇴화시킨 결과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아이 혼자서 살아가야 할 내일을 준비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부모의 만족을 위해 자녀에게 경제적으로 아낌없이 베풀면서 흐뭇해한 귀결이다.
자립심은 공부 문제와 직결된다. 자립심이 약하면 자신의 노력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쉽게 성공하고 편하게 살아갈 궁리를 더 많이 하게 된다. 기본적인 성취욕구가 약하기 때문에 어려운 고비를 만나면 쉽게 무너진다. 자연스럽게 불평불만을 많이 갖게 된다. 조금만 불편해도 참지 못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은 선생님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교재를 가지고 공부하면 짜증을 내다가 이내 딴 짓을 하기 십상이다. 또한 경제적인 의존은 심리적으로 연결되어 대인관계에서 종종 낭패를 겪게 만든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과 생활하는 것을 힘겨워하며 사소한 갈등에도 쉽게 스트레스를 받아 공부의욕을 상실한다.
부모의 경제력으로 자녀의 공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그래서 대부분 실패하기 마련이다. 자립심이 전제가 되어야할 공부의욕이 부모에 대한 의존심으로 인해 퇴화되고 그 자리를 공부 무기력증이 대신 채우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한번 생각해 보자. 갑자기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고 가정할 때 자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 아이는 과연 이전처럼 풍족하게 용돈을 주지 못하고 남들처럼 마음껏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면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까. 만약 부모를 돕겠다고 나서기 보다는 가난해진 부모 탓을 할 것 같으면 지금까지 해온 부모 노릇을 정말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 당장 생각을 바꾸기 바란다. 사교육비 아까운 줄 모르는 아이보다 사교육비가 아까워 혼자 공부하겠다는 아이의 미래가 훨씬 밝은 법이다. 아이가 희망하는 지출은 자립심을 키우지만 부모만이 소망하는 투자는 의존심만 부추긴다.
비상교육 공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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