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과 자유를 추구해 보지만 현대인의 일상은 사실 반복의 연속이다. 알게 모르게 작은 공연을 펼쳐오던 실내악단 We Soloists가 지난 3일 금호아트홀에서 가진 데뷔 연주회는 현대성의 또 다른 속내를 보여주었다. 작곡가 리게티의 ‘100개의 메트로놈을 위한 교향시’에서 메트로놈을 아이폰으로 대체한 아이디어는 패러디의 결과라 할 만하다.
무대 앞 중앙, 100개의 아이폰이 차곡차곡 진열돼 객석을 마주보고 있었다. 각각 동영상을 내보내다 하나둘씩 스러져 가던 아이폰들 뒤로 도열해 있던 것은 13명의 소속 연주자들. 손에 손에 자신의 현악기를 들었으나 그들은 아무런 연주 행위도 펼치지 않았다. 말하자면 무위(無爲)의 연주였다. 아이폰들이 행하던 ‘영상 연주’의 끝을 알린 신호는 한 주자가 친 박수소리였다. 이어 나머지 주자들의 박수가 얼마간 이어지더니 모두 퇴장하는 것으로 리게티의 낯선 작품은 ‘완주’됐다.
리게티의 의도에 의하면 100개의 메트로놈은 이 시대에는 곧 100개의 아이폰이다. 이 작품 초연 당시 공연장의 관객들은 분노했고, 방송 중이던 네델란드의 TV방송국은 허겁지겁 축구 중계로 프로그램을 바꿨다. 그러나 예술의 ‘현대성’에 익숙해진 We Soloists의 관객들은 진지한 감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이어진 일련의 무대는 기대를 만족시켜 주었다.
스티브 라이히의 ‘제국씨의 기억 장치, 대서양을 가로지르다’는 현대의 야만,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여전히 악몽으로 존재함을 웅변한 무대였다. 낡은 흑백 영상은 끝없이 질주하는 기차에서 찍은 레일의 모습을 내내 보여주었다. 아우슈비츠에서 뉴욕으로 LA로, 살 곳을 찾아 열차에 몸을 맡긴 생존자들의 경험이 불안정한 화음에 떠밀리듯 객석으로 전해졌다. 당시 그들이 남긴 기록이 영어로 낭송되는 가운데 무대 위의 현악 4중주단은 불안한 선율을 연주했다. 그들의 실연과 함께 녹음된 선율이 흘러나와 교직되며 현대 서구사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재현하고 있었다.
‘동시대인들과의 소통’을 기치로 창단한 이 연주단은 그 동안 교보문고 매장 연주회 등 통념에 반하는 일련의 활동으로 주목받아 왔다. 대표 문정훈씨는 “관객과 함께 하는 무대, 새로운 트렌드의 클래식을 반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연주회에서 급진적이었던 1부에 이어, 프로코피에프와 홀스트 등 20세기 전반부에 활약했던 작곡가들의 실내악으로 꾸며진 2부 순서는 ‘관객과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두번째 콘서트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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