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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행복전도사 알 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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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행복전도사 알 반장

입력
2010.10.0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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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칸 모하메드 아사드 자만이다. 한국 사람들은 이주노동자들의 복잡한 이름을 편하게 바꿔 부른다. 여자들에게는 꽃 이름을 붙인다. 그래서 어느 공장에 가면 온통 꽃밭이다. 장미는 재봉일을 하고, 국화는 원단을 자르고, 민들레는 청소를 한다. 남자들에게는 아무거나 기억하고 부르기 쉬운 이름을 붙인다. 철수도 많고, 태식이 민규도 있다. 그래도 외국인 대접을 해주려는 곳에서는 미국 이름을 붙인다. 찰리 헨리 마이클 조지.

트로트 가수가 된 이주노동자

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미국 이름으로 불린다. 이슬람 권 노동자들은 흔히 알리라고 불린다. 이슬람 이름 중 유일하게 한국 사람들이 쉽게 기억하고 부를 수 있는 이름이다. 그래서 칸 모하메드 아사드 자만은 알리가 됐다. 이름이 알리니까 뒤에 직위를 넣어서 알 반장이라고 부르는 것도 지극히 한국적인 발상이다.

1975년 생, 칸은 우리 나이로 서른여섯이다. 1996년 스물두 살에 한국에 왔다. 고등학교 관리자가 되려고 방글라데시 국립대 법학과를 다녔다. 그러다 돈을 벌기 위해 미국에 가려고 했지만 토플 점수가 뜻한 대로 나오지 않아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 형이 먼저 와서 일하고 있었다. 그 뒤로 14 년, 한국에서 안 해본 일은 없다.

충북 음성 어느 공장에서 인생의 배필을 만났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한국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알고 보니 공장 사장의 딸이었다. 2 년을 몰래 만나다 사장에게 말했다. 사장은 의외로 선선히 허락했다. 이미 2 년 동안 칸의 선량함과 성실성을 보아온 뒤였다. 한국 청년들이 버리고 떠난 시골의 조그만 공장을 지켜갈 사람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 뒤 장인의 공장은 부도가 났다. 칸은 지금은 다른 공장에 다니며 일하고 있다.

고달픈 한국 생활을 지켜준 건 트로트였다. 트로트 노래 속에는 방글라데시 노래와 비슷한 슬픔 같은 게 있었다. 특유의 꺾는 창법도 방글라데시 노래와 비슷했다. 공장 동료들은 칸이 노래를 부르면 행복해 했다. 안산에서 외국인 노래자랑을 3 년 연속 석권했다. 충북 음성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에서는 한국 사람들과 겨뤄서도 1등을 했다. 조항조의 , 태진아의 이 그의 주요 레파토리였다.

주중엔 공장에서 일을 하고 주말에는 도자기 축제, 마늘 축제 등의 지역 축제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의상을 차에 싣고 몇 시간씩 직접 운전해 가서 노래를 불렀다. 많이 주는 곳은 30 만원, 어떤 곳은 안주는 곳도 있었다. 그래도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자신의 노래 소리에 사람들이 행복해하면 스스로도 더 없이 행복했다. 방글라데시는 아주 가난한 나라지만 행복지수는 어느 나라보다 높은 나라이다. 칸은 방글라데시에서 온 행복전도사가 되고 싶었다.

처음 칸을 만났을 때 연기를 해보라는 내 말에 칸은 극구 고사했다. 노래라면 자신 있지만 연기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두렵다고 했다. 나는 '공장에서 일하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방글라데시 노동자 역할'이라 말하며 현재 칸과 똑같은 사람이니 평소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고 설득했다.

연기는 또 다른 숭고한 노동

연습 기간에 칸은 누구보다 성실했다. 토요일 연습을 하기 위해서 금요일마다 야근을 하고 서울에 올라왔다. 연기는 그에게 또 하나의 숭고한 노동이었다.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밤을 새워 고쳐왔고,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특근을 해서라도 채워왔다. 그의 대본에는 내가 지시했던 말들이 한국말과 방글라데시 말로 언제나 빈틈없이 적혀있었다.

그가 출연한 영화가 전국에서 상영되고 있는 지금도 칸은 공장에서 일한다. 또 주말에 행사가 잡히면 달려가서 노래를 한다. 노래 부르기 전에는 언제나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방글라데시에서 온 행복전도사 칸입니다." 남에게 주는 행복만큼 칸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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