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
아릿한 잠에서 깨어보니
손끝에 무언가가 감겨져 있었다
간밤에 누가 다녀갔을까 갸우뚱갸우뚱,
손가락에 감겨 있는 것을 풀어내었다
육백오십여 년 되었다는 은행나무
보러 가는 차 안에서 첫눈을 만났다
목적지에 닿은 뒤로도 그치지 않는 눈
은행 둥치에 안겨, 등으로 눈발을 받아내다가
겨울나무에도 온기가 있다는 걸 알았다
첫눈 그친 저녁,
한 여자가 하얀 얼굴로 늦은 걸음을 해왔다
내년에도 제가 봉숭아물 들여드릴게요,
발자국에 고이는 물처럼 조용조용 차오르는 눈물
봉숭아물 빠지지 않은 손으로 닦아주었다
● 어린 시절, 고향의 거리 풍경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줄지어 서 있던 가로수들이 생각납니다. 김천역에서 옛 시청이 있던 자리까지는 은행나무를, 그 너머로 아랫장터까지는 히말라야시다를 심어놓았죠. 그 경계에 제가 다닌 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가을이면 등굣길이 단풍으로 노랗게 물들었습니다. 그럴 때면 마음도 노랗게 물드는 것 같았죠. 그 길은 완만한 오르막길이었죠. 오르막을 다 오르면 학교가 나왔습니다. 거기서부터 다시 아랫장터까지는 완만한 내리막. 학교 앞에 서면 마치 국경에 선 것처럼 히말라야시다들이 서 있는 풍경이 보였습니다. 그 히말라야시다들 위로 사람의 얼굴을 닮은 금오산이 멀리 보였는데, 그래서 그건 마치 큰바위얼굴을 연상시켰는데, 어린 내게 어떤 포부가 있었다면 아마도 바로 그 순간에 생겼을 겁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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