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통일 20주년을 맞은 독일은'통일의 성공'을 자축했다. 국가 지도자들은 새로운 독일의 변혁을 이끈 옛 동독주민의 용기를 거듭 찬양했다. 또 연대 노력으로 신속하게 동독을 재건, 존경 받는 나라를 만든 서독인들을 치하했다.
경축사는 으레 그러려니 하더라도, 언론의 특집과 논평도 유난히 밝고 긍정적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연방통계청은 각종 사회경제지표를 분석한 에서 "성공에는 그늘이 있다"면서도 꿈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지레 통일비용 걱정한 한국사회
물론 좌파 정당은 "동서 격차가 굳어졌다"고 비관했다. 우파 정부도 '동서 거리감과 신뢰 부족'을 숙제로 꼽았다. 그러나 관심을 끈 것은 권위 있는 알렌스바하 여론조사연구소의 분석이다. 통일 20년 여론조사에서 옛 동독주민의 88%, 서독의 82%가 "통일은 옳았다"고 답한 것은 새로울 게 없다. 국민 80%가 줄곧 그리 답했다. 그보다, 동서독 주민 63%가 "동반성장을 이뤘다"고 평가한 것이 두드러진다. 특히 동독주민 80%가 동독지역이 서독과 별 차이 없이 변모했다고 수긍했다.
알렌스바하 연구소는 통일의 현실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논의에 늘 따라 다닌 우려와 비관은 단기 경제지표에 매달린 탓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양한 설문을 통해 드러난 여론의 자기모순을 외면한 채 습관처럼'머리 속 장벽'을 강조한 나머지, 동서독 주민 다수가 통일을 역사의 필연이자 행운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고 논평했다. "함께 된 것은 함께 성장한다"는 구호와 "동독은 번영의 터전이 될 것"이라던 장미 빛 약속은 실현됐다는 평가다.
이런 글을 읽으면서 베를린 특파원시절, 통일 1주년 때 쓴 을 떠올렸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우리 사회는 통일의 기회가 오기도 전에 이미 통일을 서둘러선 안된다는 교훈을 얻은 듯하다. 통일 독일의 과도적인 경제사회적 진통을 근거로 '우리도 일시에 완전통일을 이루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회를 향해 다른 메시지를 전할 의욕이 없다. 독일 언론은 경제사회적 혼란에 대한 불평은 '통일 축배의 환희를 망각한 숙취 호소'라며, 조기통일 반대론을'자기도취 현상유지욕'이라고 나무랐다."
20년이 지나, 독일통일 직후처럼 다시 통일의 꿈을 말하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 '천문학적 통일비용'을 되뇌며 "통일을 서두르면 재앙이 될 것"이라던 보수가 앞장선다. 어느 보수논객은 지난 10년 진보 정권이 통일비용을 빌미로 통일 꿈을 가로막았다는 주장까지 한다. 내 기억으로는 일찍부터 외부에서 나온"통일이 늦을수록 통일비용이 늘어난다"는 충고에 귀 기울이지 않기는 보수와 진보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이런 경험을 새기면, 지레 통일 걱정이 많던 보수가 새삼 통일 꿈을 얘기하는 것은 대북 지원보다 압박을 옹호하려는 속셈으로 비친다. 더욱이 북한의 체제 붕괴를 바라기보다, 더 멀찍이 두고 마음 편히 살았으면 하는 심리가 바탕이 아닐까 싶다. 독일 사회가 경계한 자기도취와 현상유지 욕심을 의심할 만하다.
통일 기회 얻을 길 고민을
그렇다고 노상 대북정책 변화를 외치는 진보가 진정으로 통일 꿈을 꾸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진보의 주장은 이를테면 햇볕정책을 되살려 북한의 개혁 개방을 이끄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3대 세습 굳히기에 골몰하는 북한이 과연 체제 개혁과 개방에 나설지 의문이다. 이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않는 논리는 아무리 살펴도 공허하다.
사회주의 비교연구에 따르면,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겸 술탄(Sultan)적 세습체제는 애당초 체제 개혁이나 체제 전환이 불가능하다. 일족(一族) 사회주의, 왕조 사회주의로 가고 있는 북한은 더욱 그럴 것이다. 이런 학자들의 논리를 신뢰한다면, 우리가 통일의 기회를 얻을 길은 무엇일까. 막연히 통일 꿈, 통일 걱정을 되풀이하기보다 그걸 고민할 때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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