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첫날인 4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회의장. 신각수 장관 직무대행을 비롯한 외교통상부 직원들은 하루 종일 죄인처럼 주눅 든 모습이었다. "당당하지 못하고, 숨어서 일하는 것 같다"는 여야 의원들의 질타도 쏟아졌다.
대한민국 외교를 이끌어가는 핵심 외교관들이 의원들의 따가운 비판에 고개 숙인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번 국감에서 외교부에 대한 감사가 이목을 끈 것은 국민들의 공분을 산 전ㆍ현직 외교관 자녀 특채 파문 때문이다.
여야 의원들은 관련자들을 증인으로 신청했고, 이날 감사장엔 5명이 출석했다. 그러나 정작 파문의 당사자인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유종하 전 외교장관, 전윤철 전 감사원장 등도 출석하지 않았다.
일본 대학 강연 일정 등으로 도쿄에 머물고 있는 유 전 장관은 며칠 전 '심리적 충격으로 인한 건강문제 때문에 해외에 체류하겠다'는 내용의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그의 그러한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목소리보다 2년 반 동안 우리 외교의 수장이었던 사람의 변명치고는 비겁하다는 지적이 더 크게 들린다.
그의 비겁함은 외무고시 과목 교체 영향력 행사 및 아들의 보직 특혜 논란 때문에 출석한 홍순영 전 외교장관과 대비돼 더 부각됐다.
물론 홍 전 장관은 2008년 7월 유 전 장관 공관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닷새 뒤 그의 아들이 주미대사관으로 발령 난 것 등에 대한 의원들의 질타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정직하게 사는 게 인생 모토다. 그렇게 천한 사람 아니다"라며 당당히 맞서는 그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는 의원들도 있었다.
밖에서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외교관들이 조금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국감이었다. 유 전 장관 등도 21일 외교통상부 종합감사 때는 꼭 출석해 후배 외교관들이 다시 당당함을 찾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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