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국가와 사회는 점점 부유해지는 반면 다른 나라들은 지지리도 못사는 최빈국으로 남게 되는 것일까? 아직 경제학자들이 해결하지 못한 어려운 문제중의 하나다. 물론 여러 가지 그럴듯한 가설이 있다. 지리 기후 문화 역사적 차이 등등에 기인한 많은 가설이 단골로 등장한다. 최근 들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가설의 하나는 불안감(insecurity)이다. 불안감은 경쟁에서 뒤쳐지면 낙오가 될 뿐 아니라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 조차 빼앗겨 버릴 것이라는 걱정에서 나오는 것으로 설명된다.
불안은 국가적 성공의 바탕
나라를 예를 들어 봐도 그렇다. 미국을 보자.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군사적 패권에 대한 위협에 대해 병적으로 우려한다. 중국에 대한 과장된 두려움은 오히려 미국을 보다 건강하고 경쟁력 있는 나라로 유지하게 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천연자원 부족과 지리적, 문화적 고립에 대한 일본인들의 걱정은 전후 일본을 세계 제 2위의 부국으로 만들었다. 우리도 마찬가지. 폐허만 남긴 한국전쟁과 주변 강대국들의 견제는 오히려 한국인들을 똘똘 뭉치게 해 절대빈국에서 오늘날 가장 성공한 국가로 발돋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같은 불안감은 개인에게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많은 부분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지난 세기 한국인의 삶을 요동치게 한 가장 큰 원인을 꼽는다면 단연 교육문제일 것이다. 일부 상류층을 제외하면 대다수 국민을 고통 속에 몰아 넣고 있는 것은 교육이다. 사교육비는 천문학적인 수치에 이르고 공교육은 사교육에 백기를 든 지 오래다. 교육현장의 경쟁은 채 영글지 않은 영혼의 청소년까지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이처럼 교육문제가 한국사회의 가장 큰 고통으로 등장한 데는 바로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는 극심한 불안감이 작용하고 있다. 이 같은 불안감은 특히 시장주의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자살로 연결되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중고 학생 수는 2008년보다 50% 가까이 증가해 200 명을 넘어섰다. 고교생이 140명으로 전체의 69%를 차지했다. 청소년 자살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낙오될 것이라는 끝없는 불안감이 청소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한국인 전체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 중 22명으로, OECD 회원국 중 단연 1등이다. 지난 해의 경우 하루 평균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8년보다 19%나 늘었다. 특히 자살은 20ㆍ30대 청춘 세대의 사망원인 중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20ㆍ30대 사망원인 대부분이 자동차 사고인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크나큰 성공을 거둔 풍요로운 나라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아이들만 괴로운 것은 아니다. 유명인사들도 죽음을 택하고 있다. 지난 몇 년만 거슬러 보더라도 최진실 이은주 안재환 박용하 등이 목숨을 끊었다. 두산그룹 박용오 회장도 자살했으며 전직 대통령마저도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개인의 불안은 고통과 비극
잘사는 나라, 그러나 대다수 국민이 고통스러워하는 나라가 2010년의 한국이다. 그러나 청소년을 모델로 내세운 TV 공익광고를 통해 정부는 여전히 경쟁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가다 이따금 말에서 내려 달려온 쪽을 바라보고 한참 쉰 뒤 다시 길을 간다고 한다. 지친 말을 쉬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쉬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너무 빨리 달려 온 탓에 자신의 영혼이 아직 뒤쫓아 오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에서 잠시 쉰다고 한다. 어느 정도 살게 된 이쯤에서, 경쟁력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보다 한번쯤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성찰의 기회가 필요하지 않을까.
김동률 KDI 연구위원·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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