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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U-17 여자월드컵 우승 이끈 최덕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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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U-17 여자월드컵 우승 이끈 최덕주 감독

입력
2010.10.04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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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이하 여자청소년 축구대표팀이 세계를 정복하자 ‘맨땅에 헤딩해서 이룬 우승’이라는 말이 나왔다. 한국 여자축구의 빈약한 저변과 열악한 환경을 고려하면 분명 ‘기적 같은 우승’이 맞지만 최덕주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베스트 멤버는 충분한 우승 전력이었다”는 게 최 감독의 답변이었다. 무명 시절을 거친 뒤 유소년 지도에 헌신, 명장 반열에 올라 선 최 감독을 2일 신화 창조의 시발점이 된 파주 축구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에서 만나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전설’을 들었다.

최대 고비였던 나이지리아전 뒷이야기

“우승을 하고 오겠다”는 출사표를 던진 최 감독이었지만 조별리그 3차전 독일전을 제외하곤 단 한 경기도 마음 편하게 치른 적이 없다. 그는 “경기마다 박빙이어서 가슴이 새까맣게 타 들어갔다”고 털어놓았다. 마음고생을 대변해주듯 출국 전 검은색이었던 최 감독의 머리는 반 백발이 돼있었다.

최대 고비였던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6-5 승)을 승리한 뒤 우승을 예감했을까. 괜스레 우승을 공언했던 것에 대한 짧은 후회가 스쳐 지나갔다. “힘들게 나이지리아전을 이겼고, 마침 결승전 상대라고 여겼던 독일이 떨어지면서 우승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지리아전에서는 분위기가 처져있던 대표팀에 자극제가 필요했다. 그래서 최 감독은 하프 타임 때 물통을 걷어차는 등의 ‘쇼’를 연출했다. 자신의 스타일을 너무나 잘 아는 선수들에게 그 의도를 들켜버렸지만 효과는 분명했다. 최 감독은 “라커룸에서 ‘공 차기 싫은 사람은 나와 봐 바꿔줄 테니’라며 물통을 걷어찼다. 몇몇 선수들이 피식 웃기에 얼음을 담은 아이스박스까지 걷어찼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 같은 감독의 ‘쇼’는 선수들의 투지를 불태웠고, 결국 연장 접전 끝에 극적인 역전승을 따냈다.

4강전인 스페인전을 앞두고도 최 감독은 고도의 심리 전략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그는 “나이지리아전에서 실수했던 부분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실수에 대한 회상과 두려움으로 선수들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잘했던 공격적인 부분만 보여줬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놓았다.

‘6+8=14’, ‘4-3-3’으로 우승 신화

한국은 숙명의 라이벌인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징크스’를 잘 살려 우승컵까지 들어올렸다. 최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기 때문에 징크스를 깨는 게 쉽지 않다. 우리가 아시아선수권에서 일본을 1-0으로 이긴 적이 있어 ‘지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경기에 임한 것도 전력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우승의 원동력을 숫자로 표현하기도 했다. ‘6+8=14’는 일본전에서 골을 넣었던 선수들의 등 번호로 구성된 수식. 한국은 6번 이정은이 선제골을 넣은 뒤 8번 김아름이 두 번째 골, 14번 이소담이 동점골을 성공시켜 결승전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그는 “미드필더들이 모두 일본전에서 골을 넣었다. 미드필드진이 골을 넣어 중앙 요원을 더 투입하려 했으나 더 이상의 교체 요원이 없었다”고 활짝 웃었다.

언뜻 보면 포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4-3-3’의 숫자도 우승의 밑거름. 이는 기술과 정신, 체력 세 부문을 10으로 놓고 분배했을 때 비율이다. 최 감독은 “기술을 4로 가장 중시하고 정신과 체력을 각각 3으로 놓고 팀 전력을 키워나갔다”며 “때문에 한국 선수들의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이번 대회에서 정신력을 바탕으로 한 투혼이 우승 원동력으로 꼽혔지만 만약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절대 정상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버스와 라커룸에서도 전략적인 심리 컨트롤

‘온화한 아버지상’을 앞세워 태극소녀들에게 눈높이를 맞춘 최 감독만의 ‘심리 컨트롤 방법’도 우승의 토대가 됐다. 최 감독은 ‘좌절은 없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세뇌교육에 가까울 정도로 주입시켰다. ‘어떤 상대와 만나도 이길 수 있다’는 신념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전략이라고 최 감독은 믿었다.

최 감독은 대회 기간 내내 버스와 라커룸에서도 선수들의 심리를 컨트롤하기 위한 전략을 짰다. 투지를 고취시키고 ‘우승 할 수 있다’는 신념을 불어넣기 위해 ‘챔피언’, ‘나를 외치다’, ‘거위의 꿈’ 등과 같은 긍정적인 내용의 노래들을 버스와 라커룸에서 계속해서 틀어놓은 것. 그는 해단식에서 대표팀 선수들과 다 같이 불렀던 ‘나를 외치다’ 가사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절대로 약해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뒤처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지금 이 순간 끝이 아니라~ 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외치면 돼~.’

이처럼 ‘포기는 없다’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심어준 덕분에 태극소녀들은 강호 독일과의 경기에서 위축되지 않았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았던 최 감독은 비록 0-3으로 완패했지만 가상 결승 상대로 독일을 점 찍어 과감하게 수비진을 실험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최 감독은 “이제 한국은 세계 정상을 맛봤기 때문에 어떤 고비도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는 앞으로도 심리적인 부분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행보에 대해서도 계획을 밝혔다. 6일부터 14세 이하 여자대표팀의 훈련을 맡게 된 최 감독은 “‘아버지 리더십’이라는 말처럼 축구협회 전임지도자로서 꿈나무들을 육성하고 뒷바라지하는 게 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며 계속해서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파주=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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