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꽃들 중에서 쑥부쟁이가 으뜸이다. 보랏빛 수북하게 피어있는 것이 산길 들길에서 자주 내 발목을 잡는다. 나는 부끄럽게도, 마흔이 넘어 은현리에 살면서 쑥부쟁이란 이름을 처음 알았다. 쑥부쟁이의 사촌으로 까실쑥부쟁이가 있다. 꽃의 크기가 작고 흰빛인데 개망초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개망초는 여름에 피고 까실쑥부쟁이는 가을에 핀다. 그 곁에 구절초도 핀다. 구절초는 쑥부쟁이보다 꽃과 꽃잎이 크고 흰빛이다. 쑥부쟁이는 꽃잎 사이가 촘촘한데 구절초는 약간 틈이 있다. 꼭 찾아가서 만나는 가을 풀꽃도 있다. 고마리다. 물이 흐르는 곳에 무리지어 피는 꽃이다.
고마리는 물을 맑게 해준다고 해서 '고마워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고마리 꽃이 피면 은현리 물소리가 맑아지며 깊어진다. 멀리서 보면 마치 달콤한 분홍빛 흰빛 별사탕처럼 꽃이 피는데 들여다보면 가을의 맑은 눈물 같아 짠하다. 흔히 꽃이 노래를 한다고 비유한다. 아니다. 가을에는 사람이 꽃들에게 노래를 불러줘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가을꽃 앞에서는 노래를 흥얼거려 준다. 쑥부쟁이 앞에서 '숨어 우는 바람소리'를, 고마리 꽃 앞에서 '개여울'을 불러준다. 해마다 좋은 친구로 찾아오는 가을꽃에게 주는 선물이다. 무엇보다 그 친구들이 음치인 내 노래 타박하지 않고 들어줘서 고맙다. 올 가을 당신에게도 노래 불러줄 수 있는 꽃 친구가 생기시길!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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