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하는 말로 국가경제에서 유동성은 몸 속의 혈액에 비교된다. 몸이 아무리 건강하고 신체 각 부위가 튼튼해도 혈액이 돌지 않으면 소용이 없듯, 경제에선 화폐의 역할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 중앙은행은 유동성을 경제에 주입한다. 유동성 즉 통화량은 일반적으로 M2로 대변된다. M1은 다소 좁은 의미의 통화를 의미한다. 통화량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시중에 돌고 있는 현금과 현금성 예금의 합계다.
금융위기 직후부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경기에 자극을 주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했다. 당시 1조 달러가 안되던 Fed의 자산은 채권 매입, 금융기관 자금지원 등을 통해 급격히 증가, 현재 2조3,000억달러 정도로 커졌다. 사상 유례 없는 지원인데 최근에는 이것도 모자라 추가 양적 완화 정책을 펴겠다고 한다. 아직 경기회복을 뒷받침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유동성 흐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가계와 비금융기업 등 민간 부문의 보유 유동성은 국내총생산(GDP) 대비로 사상 최고수준이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돈을 너무 많이 보유하고 있어 문제가 될 것 같다. 최근 현금을 많이 보유하는 바람에 배당과 자사주 매입 압력을 받고 있는 기업들은 성장성 확보를 위해 인수ㆍ합병(M&A)에 눈을 돌리고 있다. 가계 자금은 보수적 운용을 하고 있지만 금리가 지나치게 낮아지면서 수익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유동성이 확대될 수 있는 분위기는 조성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올해 8월 미국의 M2 증가율은 전년대비 기준으로 큰 폭으로 상승했다. 전년대비 기준으로 바닥을 확인한 것은 3월이지만 의미 있는 반등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8월이 처음이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의 M2도 돌아서기 시작했으며, 유로도 그런 모습이다.
유동성이 늘기 시작했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경제에 시동이 걸릴 조짐이 보인다는 의미다. 은행들은 대출을 늘리려 하고 이를 이용해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고 소비자들은 소비를 확대하는 등의 긍정적 결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이는 안전자산으로 쏠려 있는 자금흐름을 위험자산으로 돌려 세우는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지금까지 글로벌 증시는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기업의 생산성 향상이 실적 개선으로 연결되면서 상승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의 밸류에이션을 보여주는 등 내부적으로는 아직도 불만족스럽다.
밸류에이션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요인은 리스크 프리미엄인데 이는 유동성 흐름과 매우 밀접하다. 그런데 유동성이 돌아서기 시작한 만큼 이제 밸류에이션에 보다 초점을 맞춰야 할 때가 왔다. 내년 이후로 시야를 확대하면 증시를 견인하는 요인은 유동성 증가와 이에 따른 리스크 프리미엄 하락이 밸류에이션 상승을 주도하는 재평가 장세가 될 것이다. 올해보다 내년 주식시장을 더 좋게 보는 이유이다.
이제 10월로 들어선 만큼 실적 시즌을 대비해야 할 때이다. 3분기 실적이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4분기 실적도 긍정적인 종목에 주목해야 한다. 단기 매매를 해보고 싶다면 실적 둔화가 주가에 이미 충분히 반영된 종목을 중심으로 선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김성봉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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