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신은 쑤시고(고령), 벌이도 없고(무직),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이 없는(고독) 그들은 늘 봉사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들이 봉사의 주체로 나섰다. 2일 노인의 날을 앞두고 시간적 여유와 사회경험을 바탕으로 나눔과 봉사에 나선 노인들을 만났다.
"이왕 사는 거 다른 사람들 즐겁게 해 줘야지"
1일 오후 서울 은평구 진관동의 서울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 2층 강당에 노인 10여명이 모였다. 올 8월 구성해 이제 한 달을 갓 넘긴 '돌아온 청춘악단' 악사들이다. 환갑이상, 최고령은 76세다.
시작부터 어수선하다. 탁자와 탁자 사이로 장윤정의 '어머나' 박현빈의 '곤드레 만드레' 악보가 날아다녔다. 사람들의 고함과 트럼펫 트럼본 소리 역시 허공을 뛰어다녔다.
늘그막에 봉사를 하려고 의기투합했다. "이왕 하는 거 우리 나이의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노래를 하자"고 중지를 모았다. 올 초 '아이티 지진참사 고아 돕기 자선음악회'를 한 경험도 있던 차에 복지관이 악단을 꾸리자 입단했다.
악단은 지난 한 달 동안 매주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달 7일에는 사회복지의 날을 맞아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17일에는 추석을 앞두고 복지관 무대에 섰다. 4일에는 노인의 날을 기념하는 특별무대도 예정돼 있다.
단장 김경호(70)씨는 "작년 4월까지 10년간 뇌경색으로 고생했다. 그래도 봉사도 하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웃었다. 노인인구는 급증하는 데 비해 노인복지는 턱없이 부실한 것이 현실이지만, 돌아온 청춘을 만끽하듯 이들의 멜로디는 흥겹다. 연주에 맞춰 중저음으로 흥얼거리는 김 단장의 노랫가락,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왜 시간을 낭비해, 사지가 멀쩡한데."
같은 시각 서울 안국동 아름다운가게 매장에서 만난 명예지점장 우명옥(74)씨. 자칭 봉사활동 10년 차다. 2001년 35년간의 교직을 접자 불현듯 "놀면 뭐하나, 이제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그래, 복지관 같은 데서 재미있게 놀지 늙어 왠 고생이냐고. 난 오히려 그게 낭비라고 보는데 말이야."
사실 우씨가 하는 일은 "별거 없다"는 본인 말처럼 간단하다. "경험을 나누고 조언하는 것"이라는데, 혈기왕성한 젊은 봉사자가 보면 "에게"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란다.
그렇다고 중요성마저 떨어지는 건 아니다. 아름다운가게 안국점은 첫 번째 매장인지라 성지(聖地)로 불린다. 전국 106개의 매장에 근무하는 자원봉사자라면 누구나 이곳을 거쳐야 하고, 당연히 우씨의 조언을 들어야 한다.
70여 해를 혹사한 몸은 간혹 봉사활동에 지장을 줄만큼 이상신호를 보내곤 한다. 그는 "앉아있는 시간보다는 서 있는 시간이 많아 요즘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지난달 서울시가 발표한 '2010 서울노인에 대한 통계'에서 60세 이상의 노인(96만여명) 중 31%가 건강 문제를 어려움으로 답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아직 쉴 생각은 없다.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 봉사할 거야. 노인이라고 무조건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야. 병들고, 불쌍한 늙은이로만 보지 말고, 나처럼 사는 노인도 있다는 것만 좀 알아줘."
남상욱기자 thoth@hk.co.kr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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