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배추값 요지경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배추값 요지경

입력
2010.10.01 12:15
0 0

# 지난 30일 강원 정선군 임계면. 아침부터 8명의 인부가 해발 650m 고랭지 배추 수확에 한창이었다. 총 1만9,834㎡(6,000평)면적의 배추밭이지만 수확물량은 5톤 트럭 1대분(2,400~2,700포기)뿐. 작업반장 박한수(51)씨는 “최소 4대 분은 수확해야 하는데 작황이 워낙 나빠 인건비도 빼기 힘든 상황”이라며 “그나마 수확한 배추도 대부분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알이 덜 찬 배추들 뿐”라고 말했다.

농민 이재천씨는 “작년에는 트럭 20대 분량의 배추를 출하했지만 올해 겨우 10대 분만 내놓을 수 있었다”며 “소비자들은 값이 비싸져서 배추생산농가들이 큰 돈을 번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수확량 자체가 워낙 적어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이씨처럼 배추를 직접 수확해 시장에 내놓은 농민은 드물다. 밭 3.3㎡ 단위로 산지유통인과 ‘밭떼기’계약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올해 정선의 밭떼기는 3.3㎡당 수확량을 8~10포기로 계산, 생산원가의 2배 가량인 8,000원선에 거래됐다. 포기당 1,000원 이하인 셈인데, 지금 시중에선 1만원 넘게 팔리니 일단 유통업자들은 엄청난 폭리를 취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연구위원은 “고랭지배추의 경우 80~90% 가량의 물량이 산지 수집상을 중심으로 유통되고 있다”며 “가격탄력성이 큰 채소의 특성상 이들 몇몇이 담합을 통해 가격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통업자들의 얘기는 다르다. 우선 날씨 때문에 이번에 건진 배추가 별로 없다는 것. 한 산지 유통인은 “밭떼기는 파종 직후에 이뤄지기 때문에 이때부터 모든 관리비, 인건비, 비료값 등 모든 생산비용을 유통인이 내야 한다”며 “농민들에게 원가보다 높은 값을 쳐주고 이번 기상이변 같은 향후 발생할 리스크까지 떠안는데 어떻게 유통업자들만 비난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생산농민들은 이번 사태가 비단 날씨만의 문제일 수는 없으며, 농업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없다면 제2의 배추파동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계동 임계농협 조합장은 “가뜩이나 하루가 다르게 인건비가 오르는 데다 농번기 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여기에 기후 변화, 중국산 배추 수입 등으로 향후 있을지 모를 가격 폭락이 두려운 농민들로선 판로가 보장되는 밭떼기 계약을 거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 같은 날 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농산물 유통업체 대아청과 제1매장에는 트럭 19대 분량의 배추가 입고됐다. 작황 부진 탓에 배추를 가득 채워 온 트럭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가격은 비싸고 소비는 이뤄지지 않아, 3일에 걸쳐 파는 신선도 낮은 상품도 있다는 것.

이날 이뤄진 경매 최고가는 1망에 2만8,300원. 전날(2만9,600원)보다 1,000원 내려갔지만 여전히 ‘금값’이다.

하지만 농산물시장 도매상들도 울상은 마찬가지. 오현석 경매과장은 “공급량과 소비자의 요구가 맞지 않는 지금의 가격은 사실상 산지유통인도 원하는 가격이 아니다”며 “농가를 규모화, 조직화해 정부가 출하량을 조절할 수 있는 선진 농업 시스템 도입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정선=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정민승기자 msj@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