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지음
한겨레출판 발행ㆍ304쪽ㆍ1만2,000원
‘고조선이 만주를 지배했다고?’ ‘고구려는 정말 제국이었나’ ‘신라는 발해를 동족으로 생각했나’ ‘신라는 민족의 배신자였는가’ …. 이런 도발적인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사의 상식에 의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는다.
이 책은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교수로 있는 박노자씨가 쓴 한국 고대사 교양서다. 한국인도 잘 모르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글을 발표해온 그는 이 책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 고대사의 속사정을 풀어놓는다. 그간 사회비평, 근현대사 관련 저술 등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원래 가야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고대사 연구자다.
신채호, 박은식, 최남선 등 민족사학자들이 ‘우리가 만주를 차지했을 때’에 대한 기억에 호소해 ‘만주 고토 회복’을 외쳤지만, 과연 실제로 고조선은 만주 벌판을 지배했을까. 저자는 비파형 동검 등의 유물로 미뤄 고조선의 강역은 대체로 랴오둥(遼東) 정도였으며, 기원전 3세기 연나라에 영토를 빼앗긴 뒤에는 청천강과 한강 사이로 축소돼 만주 지배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고구려도 마찬가지다. 광개토왕 시기 고구려가 랴오허에서 쑹화강, 즉 오늘날의 지린(吉林)성까지 패권을 행사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본다. 그러나 북위(北魏)의 사서를 보면 458년 지린성 지역의 ‘부여 왕국’이 북위에 조공을 한 사실이 나오며, 이는 고구려가 근대의 제국들과는 달리 이 지역을 간접적인 방법으로밖에 다스리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삼국을 통일한 김춘추를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인 백제 고구려를 없앤 민족의 반역자로 보거나, 발해와 통일신라를 동질적인 남북조로 인식하기 쉽지만 이는 ‘한민족’이라는 근대적 틀을 고대에 소급해 본 것일 뿐 최치원 등이 남긴 기록으로 보면 당대 사람들에게는 이런 인식이 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위대한 고대사’는 100년 전 외세에 의해 국권이 침탈되는 상황에서 민족주의 사학자들에 의해 ‘수난의 현대사’에 대응해 만들어진 관념이라고 이스라엘, 독일의 민족사학과 비교해가며 밝힌다. 그러면서 역사에 대한 시각도 시대와 함께 변하는 만큼 지금의 다문화시대에는 고대사를 타자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타자와의 교류ㆍ융합 중심으로 보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 한국불교의 위대한 사상가 원효가 백제로 이주한 고구려 승려 보덕에게서 불교 교리를 배웠고 중국 승려 길장의 삼론학을 자신의 사상의 바탕으로 삼았으며, 사후에 신라에서보다 오히려 일본에서 더 유명해졌다는 것을 든다. 저자는 따라서 원효를 신라 사상가라기보다는 동아시아 사상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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