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이혼하고 고혈압, 전립선 비대증 등을 앓으며 고시원에서 혼자 살던 신모(71)씨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세 자녀에게 “생활비 좀 달라”고 요구했다 거절당했다. 눈 앞이 캄캄해진 신씨는 법원에 부양료 지급 심판을 청구했고, 법원은 자녀들이 신씨에게 매월 80만원씩 생활비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신씨의 자녀들은 “가족을 외면해놓고 뒤늦게 부양을 요구하는 것은 신의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부모가 과거에 자녀 양육 의무를 이행한 것과는 무관하게 혈연관계에 의해 부양 의무가 형성된다”고 결론지었다.
‘노인의 날’을 하루 앞둔 1일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최근 자식들에게 부양비를 받기 위해 법원 문을 두드리는 노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가정법원에 접수된 부양료 청구 통계를 살펴보면 2000~2003년 연간 13~24건이던 청구 건수가, 2004~2009년에는 연 39~58건으로 증가했으며, 올해는 1~8월에만 36건이 접수되는 등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부양료는 자녀가 부모를 상대로 청구할 수도 있지만 고령의 부모가 자녀를 상대로 하거나 부부 중 경제력이 없는 쪽이 배우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에 따르면 부양료 심판은 청구서만 제출하면 간편하게 절차를 밟을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이 저렴하고 법에 정해진 몇 가지 요건만 갖추면 손쉽게 지급결정을 받아낼 수 있다. 법원은 청구인이 자력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고 부양 의무자에게 경제적 여력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 부양료 지급 결정을 내린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노인들이 경제적 불안이 커지면서 체면보다는 법으로 적극 대응해 실리를 찾겠다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현주기자 korear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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