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개정된 북한 조선노동당 규약은 3대 세습 체제의 정당화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정치, 경제 노선과 대외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북한에서 노동당 규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는 사회주의헌법 11조가 보여주듯이 헌법보다 상위의 규범이다. 노동당 규약이 북한의 국가 정체성을 비롯 정치, 경제, 사회, 대외 정책을 사실상 규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우선 북한은 노동당 당규 개정을 통해 ‘김일성조선’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함으로써 국가의 정체성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전체 인민의 공화국이라는 점보다는 고 김일성 주석과 그의 혈족들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 대표자회에 앞서 지난 8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첫 행선지로 김일성의 모교인 위원(毓文)중학교를 택한 것도 3대 권력 세습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사전 행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29일 공개한 당 규약 서문과 ‘당 규약 개정에 대한 당 대표자회 결정서’ 를 보면 1980년 10월 6차 당대회 때 개정된 내용과 달라진 대목이 적지 않다. 결정서에서는 ‘인민군대 안의 당 조직들의 역할을 높일 데 대한 내용을 보충하였다’는 대목이 가장 눈에 띈다. 위상이 대폭 강화된 당 중앙군사위 등을 통해 당의 군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후계자 김정은이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자리를 통해 군부를 장악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서문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당’이란 표현을 쓰면서 당에 대해 ‘김정일 동지를 중심으로 조직사상적으로 공고히 결합된 노동계급과 근로인민대중의 핵심부대이자 전위부대’라고 규정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노동당도 공당(公黨)이 아닌 김씨 가족의 사당(私黨)으로 전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당의 최종 목적이었던 ‘공산주의 사회 건설’은 삭제되는 대신 ‘인민대중의 자주성 완전 실현’으로 대체됐다.
북한의 대남 전략 기조와 관련 있는 노동당의 당면 목적은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의 혁명과업 완수’에서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의 과업 수행’으로 바뀌었다. ‘인민’이란 말이 빠지긴 했으나 대남 전략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개정된 당 규약 서문을 보면 전체적으로 허황된 구호나 비현실적인 목표가 삭제돼 북한의 정치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회주의, 외세 배격 등의 내용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서 “김일성 혈족의 당과 국가임을 강조하는 표현들이 들어간 것은 매우 퇴행적”이라고 분석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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