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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매의 중국미담] <1> 중추절과 월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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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매의 중국미담] <1> 중추절과 월병

입력
2010.09.3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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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 는 고금(古今)의 중국 음식과 그것에 얽힌 역사ㆍ문화적인 이야기를 담은 '강영매의 중국미담(中國味談)'을 연재합니다. 한고조 유방부터 마오쩌둥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수많은 인걸들이 빚어내는 산해진미의 에피소드는 음식을 통해 역사의 오솔길을 거니는 기분 좋은 산책이 될 것입니다.

강영매(54)씨는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겸임교수로 <중국통사> (중국사학회편ㆍ범우 발행)를 비롯해 <중국역사박물관> <중국의 성문화> 등 40여권의 중국 관련 저ㆍ역서를 낸 중국문화연구가입니다. 편집자주

우리가 추석에 송편을 먹는 것처럼 중국사람들은 월병을 먹는다. 월병은 중국어로 웨빙(月餠)이라고 하고 추석은 중추제(仲秋節)라고 한다.

전하기로는 당나라 때 음력 8월15일 대장군 이정(李靖)이 흉노를 물리치고 개선하였다. 당 고조는 투르판 상인이 헌상한 호나라의 둥근 떡인 호병(胡餠)을 하사하고 밝은 달을 가리키며 "이 호나라 떡으로 달 속의 두꺼비를 청한다"면서 함께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북송 때는 이런 떡을 궁병(宮餠)이라고 하여 궁정 안에서 유행하였다. 소동파의 시에 "소병(小餠)은 달과 같고 그 안에는 소가 들어있네"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 소병 역시 둥근 것이었을 것이다. 월병이라는 말은 <무림구사(武林舊事)> 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다

월병에 관한 여러 가지 전설 중에서 하나는 주원장(朱元璋)과 관련이 있다. 원나라 말기에 잔혹한 통치로 여기 저기서 난이 일어났다. 주원장은 각 지역의 저항세력과 연합하고 있었는데, 조정에서는 이를 엄격히 감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식을 전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궁여지책으로 '8월15일 밤에 거사를 일으키자(八月十五日夜起義)'라고 적힌 종이를 월병 밑에 감추어서 각 지역의 의거군에게 보내어 8월15일 밤에 의거하여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은 전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주원장은 본래 곽자흥(郭子興)의 부대에 참가하였지만 지도자의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 후에 곽자흥의 양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이가 바로 마황후다. 마황후는 아사 직전에 주원장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엔 전선에서 의거군들의 군복을 직접 기우며 민심을 모아 명나라 건국에 큰 힘이 됐다.

아무튼 명대부터 월병은 민간에 널리 퍼졌음을 알 수 있다. 월병은 처음에는 제수품이었지만 후에는 보름달을 보면서 월병을 먹는 관습이 생겼고, 이는 모든 가족이 만나 행복하다는 상징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명절에 원만함과 평안함을 나타내는 수박이나 월병 사과 등을 먹으며 가족의 행복과 평안을 축원한다.

본래 월병은 집에서 찌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케익과 같이 변해버렸고 지역마다 그 종류와 맛이 다양하다. 베이징식 광둥식 상하이식 등이 있다. 월병의 소로는 팥이나 각종의 견과류, 계란 노른자도 있는데 역시 지역에 따라 다르다. 크기도 송편만한 것에서부터 커다란 피자만한 것까지 다양하다.

요즘엔 음식의 단계를 넘어 예술품으로 보아도 좋을 만큼 장식에 심혈을 기울인다. 심지어는 금가루를 묻혀 수천 만원씩 하는 월병도 있다고 한다.

강영매 교수 salang@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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