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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사신(史臣)은 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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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사신(史臣)은 논합니다

입력
2010.09.2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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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이야말로 필자와 같은 역사학자들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필독 사료다. 실록이 중요한 이유는 조선왕조의 여러 가지 사건을 상세하게 정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사관들의 엄중한 역사적 평가 덕분이다. 사관들의 공정한 잣대와 서슬 퍼런 비평을 읽다 보면 역사란 모름지기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자세를 바로잡고 마음을 다잡게 됨은 물론이다.

오늘 소개하려는 이야기도 조선의 한 왕에 대한 후대의 평가다. '사신(史臣)은 논합니다.'로 글은 시작된다. 임금께서는 창경궁 후원에 높이가 100여 척이나 되는 누대를 쌓았으니 1,000 명이나 앉을 만한 크기였다. 아래에는 못을 파고 또 곁에 정자를 지었다. 창경궁 후원에서 경복궁까지 건물 수천 칸을 이어 짓고, 수로를 파서물이 궁궐 안으로 통하도록 할 계획으로 수로의 깊이와 너비, 고저를 측량하도록 했다. 이에 동원될 역부(役夫)의 수를 헤아려 보니 50만 명이나 되었다. 너무나 큰 공사여서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나 후에도 수많은 건설공사를 시행하여 담장을 쌓는다, 축대를 만든다, 땅을 판다, 궁궐을 조성한다고 수많은 인력을 징발하니 민간에는 남은 장정이 없었고, 유랑하거나 피난하는 집이 열에 아홉이었다. 부역은 과중하고 양식마저 떨어져 굶어 죽는 사람이 남대문 밖에서 노량진까지 산더미 같았다.

임금은 경복궁 경회루의 연못에 배를 띄우고 그 위에 채색 무대와 인공 산을 조성하여 각각 '만세토록 누리리라', '영원히 충성하라'고 써놓았다. 그 모습이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다. 나머지 궁궐과 건물도 멋있게 보이는 데 열중하여 기묘하게 꾸미니 화려함이 눈부실 지경이었다. 물론 그 돈은 모두 백성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도 시를 지어 자축하였다. "씩씩한 기운이 서려 있는 산봉우리들 푸른 하늘에 치솟고, 신비한 거북과 신령스런 학은 때맞추어 조화를 이루는구나. 많은 신하들이 향연에 감동돼 충성스런 마음이 넘쳐 나고, 안개 어린 누각의 아름다운 자태와 용선(龍船)은 그 모습이 우뚝하고, 봉황으로 장식한 누대는 멀리 아득하도다. 이 모두 내가 놀러 와 감상하려고 백성을 수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영원히 잘 살도록 하기 위함이로다."

임금께서는 본인의 잘못을 알고 있었지만 말하는 이가 있을까 두려워 경연을 폐지하고 언론(사간원과 홍문관)의 관리들을 대폭 축소하였으며, 상소와 간언을 일절 금지하였다. 더욱이 법을 좋아하여 조금만 비판의 말을 올리더라도 어명을 거스른다 하여 어떻게든 죄를 얽어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다. 사관들의 기록 가운데 직언과 비판의 이야기가 있으면 모두 도려내고 삭제하도록 하고 자신의 잘못은 절대 쓰지 못하게 하였다. 기록을 담당한 춘추관을 모두 없애고 관련 없는 이들로 하여금 역사를 쓰게 하였다. 예로부터 형편없는 임금이 비록 많았지만 이러한 임금은 본 적이 없다. 실록의 글은 여기까지다.

사실 2010년의 대한민국이 수백 년 전의 조선과 같을 리 만무하다. 그렇지만 실록은 정치가들이란 늘 자신의 행위가 온전히 나라를 위함이었다고 강변했다는 점, 비판의 목소리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고 반성할 줄 아는 지도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묵묵히 전하고 있다. 모름지기 역사학이란 평가를 본연의 임무로 삼는다. 공정한 사회를 위한 정의로운 노력을 이유 없이 비방하지 않으며 반대로 정의롭지 않은 행위를 힘에 굴복하여 찬양하지 않는다.

요즘 자신의 허물은 돌보지도 않은 채 자신이야말로 국가를 위해 일할 사람이라고 강변하는 몇몇 정치가들을 보면서 훗날의 역사가 이를 어떻게 평가할지 두려울 뿐이다.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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