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신한금융 경영진 내분사태 벌어지기 이전에도 라응찬 회장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리고 있었다.
한쪽에선 그의 카리스마를 예찬했다. 후발주자였던 신한이 불과 10여년만에 국내 최정상은행은 부상할 수 있었던 힘, 그 원천은 관치바람까지 막아낼 수 있었던 라 회장의 흔들림 없는 권위와 절대적 리더십이었다는 것. 때문에 대다수 금융권 인사들은 신한의 성공사례를 들어 "은행이 강해지려면 임기에 구애 받지 않는 강력한 CEO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판도 있었다. 라 회장의 경영능력은 인정하지만, 오너도 아니면서 오너보다 더 막강한 제왕처럼 군림하고 있다는 것. 이런 장기집권ㆍ황제경영에 대한 지적의 진원지는 주로 관료그룹이었는데, 타 은행과 달리 신한에선 관치의 입김이 잘 먹히지 않는 것에 대한 반감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소수의견'이나마 라 회장을 고깝게 보는 시선도 엄연히 존재했다.
신한사태 이후 라응찬 예찬론이 거부정서로 바뀌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논의는 이제 라 회장 개인을 넘어 은행의 지배ㆍ경영구조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은행경영문제를 자세히 들여다 보겠다"고 하고 있고, 일각에선 '금융CEO 장기집권규제법'까지 거론하는 상황이다.
과연 올바른 지배구조, 바람직한 경영구조는 뭘까.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신한의 지배구조가 '오답'이라면, 도대체 어디서 해답을 찾아야 할까.
신한의 정반대편에 우리금융이 있다. 라 회장이 신한지주CEO로 취임한 2001년 이후 우리금융에선 회장사진이 네 번(윤병철 황영기 박병원 이팔성)이나 바뀌었고, 행장 역시 4명(이덕훈 황영기 박해춘 이종휘)을 거쳤다. 장기집권과 제왕적 리더십을 용인한 신한식 지배구조가 문제라면, 결코 연임을 용납하지 않는, 그럼으로써 '강력한 리더십'행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우리금융의 지배구조가 대안이란 말인가. CEO 재임기간 평균 2.5년의 우리금융 실상을 아는 사람이라면, 코웃음을 칠 일이다.
좋은 지배구조에 대한 의문은 일반 기업도 다르지 않다. 삼성이 '황제경영' 소리를 들으면서도 세계 정상에 오른 상황, 그 못지 않은 제왕적 경영에 '즉흥적이다'는 비판까지 받았던 현대차가 세계시장에서 고속 질주하는 현실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는지. 일각에선 오너CEO로 복귀한 LG전자를 두고 '북한식 세습경영' 운운하지만, 전문경영인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낸다면 뭐라 해야 할지. 정반대 사례인 포스코, 주인 없는 회사로서 한번도 '외풍'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던 이 회사 또한 글로벌 초우량기업 반열에 오른 것은 그저 우연이라고 해야 할는지.
확실히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투명성과 실적, 두 가지만 담보된다면 지배구조가 네모든 세모든 따질 일은 아니지 싶다. 신한 사태를 통해 문제가 드러났으니, 정부는 또다시 지배ㆍ경영구조의 '모범규준'을 만들고 싶겠지만, 어떤 모범규준도 결코 모범답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정부 스스로 잘 알 것이다. '기업은 특히 금융은 정부 손을 타지 않을수록 좋다'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이성철 경제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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