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인천공항 국제선 입국장. 내로라하는 세계 최정상 팀들을 잇따라 물리치며 월드컵 우승이라는 한국 축구사의 신기원을 이룩한 17세 이하 ‘태극소녀’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은 몰랐다”는 듯 소녀들의 낯빛은 당황함이 역력했다. 갑작스런 관심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지만 태극소녀들은 어느새 긴장이 풀리는 듯 재치 있는 입담을 과시했다. 또래 10대의 발랄한 모습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8골로 득점왕 등 2관왕을 거머쥔 여민지(17ㆍ함안대산고)는 이날 귀국 기자회견에서 “대회 출국 전 8골을 넣겠다고 약속했는데 사실 못 넣을 줄 알았다”고 웃으면서 “동료들이 기회를 많이 줘서 골을 넣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한 부분도 많이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대회였다고 했다.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더 많이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번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도 여자축구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여민지는 가장 하고 싶은 것과 생각나는 사람을 묻자 주저하지 않았다. 가족이었다. 그는 “엄마, 아빠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며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돌아와 이었다.
시상대 맨 위에 오른 소감을 묻자 “(지)소연 언니처럼 사진을 찍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이 돼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다음달 열리는 전국체전 출전 여부에 대해서도 “무릎이 아프긴 하지만 알려진 것 보다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 학교를 위해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출전해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여민지는 17세 이하(U-17) 여자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오른 무릎 십자인대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의 80%가 채 되지 않는 몸 상태였다.
주장 김아름(17ㆍ포항여전자고)은 “한국에 오니깐 (우승이) 실감 난다. 그냥 너무 떨린다”며 수 많은 환영인파가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숱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선방 쇼’를 펼치며 우승의 밑거름이 된 골키퍼 김민아(17ㆍ포항여전자고)는 “결승전에서 실수를 많이 해 동료들한테 너무 미안했는데 잘해줘서 고마웠다”고 수줍게 웃었다.
난적 일본과의 결승전 당시 선제골을 넣었지만, 승부차기에서 실축, ‘천당과 지옥’을 오간 이정은(17ㆍ함안대산고). 만감이 교차한 듯 어렵게 말문을 연 그는 “한일전은 전쟁이라고 늘 들어왔다. 그래서 꼭 일본한테는 지고 싶지 않아 죽기 살기로 뛰었다”며 “자신 있게 슈팅을 때렸는데 실축 할 줄은 정말 몰랐다”고 고백했다.
역시 마무리는 장슬기(16ㆍ충남인터넷고)의 몫이었다. 승부차기에서 제일 마지막 키커로 나서 피 말리는 연장 대혈투에 마침표를 찍은 장슬기는 “솔직히 너무 부담스러웠지만 이 골만 넣으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 있게 찼다”고 행복한 순간을 떠올렸다.
‘덕장’ 최덕주(50) 감독은 “우승에 대한 확신을 마지막까지 가지지 못했다. 매 경기최선을 다했고 진다는 생각은 한적이 없었다”며 “결승전에서 예감과 분위기가 너무 좋아 꼭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인천공항=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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