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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학으로 간 젊은 교육관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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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학으로 간 젊은 교육관료들

입력
2010.09.2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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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쳇말로 '잘 나가던' 교육부 핵심 보직 과장 A씨가 최근 사표를 내고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40대 중반을 겨우 넘어선 젊은 인재가 정부를 등진 것이다. 많은 행시 출신 국가공무원처럼 미국에서 장기간 국비(國費) 유학을 했으며 박사학위도 땄다. 정부 조직의 중추역할을 하는 관료(官僚) 자리에 앉힌 국가를 위해 한창 보은(報恩)해야 할 시기에 거꾸로 정부를 떠난 것이다.

왜일까. 인사 불이익? 아니다. 요직에 있을 때 그만뒀다. 경제적인 이유? 각종 수당 등을 합한 관료 월급은 비슷한 경력의 대학 교수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사석에서 그는 동료들에게 "교육부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앞으로 10년은 족히 우리나라 교육 발전에 몸을 던졌어야 할 엘리트 교육공무원이 내뱉은 '교육부를 떠나는 이유'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비단 그만이 아니다. 노무현 정권 후반기부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교육부를 떠난 40대 젊은 관료들이 족히 10명은 넘는다면 믿겠는가. 공교롭게도 모두 교수로 갔다. 청와대에 파견근무를 하다 대학으로 옮긴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본부에서 비중있는 일을 했던 인재들이다. 오랜 기간 한솥밥을 먹었던 선ㆍ후배들에게 털어놓은 '사표의 변(辨)' 역시 A씨와 비슷하다.

"미래가 안 보인다"는 젊은 교육관료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정부 관료가 전임(專任) 이상의 정식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은 간단치 않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쁜 공무원이 교수가 되는 데 필요한 논문들을 언제 쓰겠는가. 대학 측과의 사전 조율을 의심해봐야 하는 대목이다.

대학이 먼저 '미끼'를 던졌을 수 있다. 갑(甲)과 을(乙)의 원칙이 깨지지 않고 있는 교육부와 대학 간의 관계를 고려할 때 평판 좋고 실력 갖춘 젊은 교육관료를 교수로 영입하는 것은 밑지지 않은 장사였을 터이다. 해당 관료들 역시 65세까지 신분이 보장되는 교수직이, 고위공무원으로 올라갈수록 위치가 불안해지고 스트레스가 극심한 공직 생활에 비해 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을법하다.

엘리트 교육관료들의 교수 선택을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 다만 유독 교육부만 젊은 인재들의 엑서더스가 두드러지는 현상은 짚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MB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교육 개혁정책들을 쏟아냈다. 정권의 존재를 각인시키기위해선 필요했지만 방법론이 문제였다. 특정 정책 시행에 앞서 교육계와 교육부 내부의 동의가 이뤄진 뒤'완제품'을 교육 현장에 던져야 했으나 그렇지 못한 측면이 많았다. 교육계의 다른 목소리가 당연히 존중되고, 관료들의 이견이 촘촘히 반영된 '명품'이 아닌 '불량품' 수준의 정책들이 현장에 전달된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나 자율형사립고 제도, 사교육 대책, 유아교육선진화 방안 등은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대표적인 하자 (瑕疵) 상품들이다.

8ㆍ8 개각 이후 교육부 공무원들은 "우리는 '루저 부처' 직원들"이라며자조한다고 한다. 장ㆍ차관이 모두 외부인 출신으로 채워진 유일한 부처라는 패배 의식이 녹아 있다. 정권으로부터 버림받은 부처가 아니냐는 하소연이다. 젊은 인재들의 때이른 대학행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

'루저 교육부'는 정권이 바뀌면 '위너 교육부'로 언제든지 상황 반전이가능하다. 하지만 교육 주무부처 뿐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 마저 '루저'가 돼서는 정말 곤란한 것 아닌가. 엘리트 교육공무원들의 공백은 불량 교육정책 양산으로 나타날 수 있다. MB는 이런 실상을 알고 있을까.

김진각 정책사회부 부장대우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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