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가을, 대기업에 근무하던 박과장은 조간신문을 보고 난 뒤 오후에 조퇴 신청을 했다. 얼마 전부터 투자를 고민했던 펀드가 신문 경제면에 수익률 1위로 큼지막하게 소개된 게 아닌가. 서둘러 달려간 증권사 객장에는 박과장 같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린 걸 보니 진작 투자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08년 가을, 자영업을 하는 김씨는 언제부터인가 아침이 되면 한숨만 나온다. 1년 전 매입한 주식이 마이너스 상태인데 신문이나 뉴스에서 ‘경제위기가 확산되면서 주식시장이 폭락했다’는 보도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주식 생각만 하면 속이 쓰려 주식 시세를 확인하지 않은지도 오래 되었다.
박과장과 김씨의 투자가 결과적으로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알 수 없다. 박과장은 주식시장이 호황기일 때 투자했지만 더 비싼 가격에 환매해서 투자에 성공했을 수 있다. 김씨도 고통스러운 시기를 잘 견뎌서 원하던 수익률을 달성했을 수 있다. 하지만 투자에 있어 ‘쌀 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 모두 마음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알고 보면 박과장이나 김씨의 이야기는 바로 보통사람인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간은 냉철한 이성과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투자자의 행동은 냉철한 이성에 의한 행동이기보다는 복잡한 감정으로 인해 나타나는 모습이다. 박과장처럼 주식시장이 많이 올랐을 때 투자를 실행하게 하는 인간의 감정은 대체 뭘까.
투자를 망치는 심리 1- 자기과신
우리가 투자를 결정할 때는 여러가지 과정을 거친다.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그 정보를 바탕으로 투자를 결정한다. 그런데 이때 나타나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이 있다. 바로 ‘자기과신’ 편견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능력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한다는 사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전 어느 조사에서 운전면허가 있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자신의 운전 실력에 대해 물어보았다. ‘평균 이상, 평균, 평균 이하 세 가지 중 어디에 해당하는가’라고 묻자 학생의 82%가 “내 운전실력은 평균 이상”이라고 답했다. 조사 대상이었던 학생들이 만약 주식투자를 한다면 82%는 자기과신 편견에 영향을 받는 투자자가 될 것이다.
자기과신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적절한 자신감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불신하는 사람보다 매사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인생에서 성공할 확률도 높다. 그러나 투자에 있어서 만큼은 자기 과신은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다.
자기 과신은 특히 주식 호황기에 많이 나타난다. 투자를 했는데 짧은 기간에 돈을 벌면, 시장이 돈을 벌어 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실력으로 돈을 번 것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 대다수 투자자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자기 과신에 빠진 사람들은 수익이 발생할수록 그에 맞춰 계속 투자금액을 늘려 간다. 겨울에 얼어붙은 호수를 걷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는 얼음이 깨질까 불안해하며 조심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많을수록 ‘깨지지 않겠지’하며 조심하지 않는다. 개인 능력에 대한 과신이나 다수의 행동에 대한 과신은 결과적으로 대다수의 투자자들이 비쌀 때 투자를 하도록 만든다.
투자를 망치는 심리 2- 위험회피
투자에 있어 위기라는 것은 ‘위험과 기회’의 줄임말이다. 자기 과신은 주식시장 호황기에는 독으로 작용하지만 역으로 침체기에는 약이 될 수도 있다. 두둑한 배짱으로 싼 가격에 우량 자산을 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침체장에서 투자자들은 더욱 움츠러든다. 마치 카드게임에서 한번 큰 돈을 잃고 나면 다음 판에는 카드패가 좋아도 쉽게 베팅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장기간 주식시장이 침체를 겪다 보면, 투자자는 성공의 경험보다 실패의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더구나 실패는 최근에 겪은 것이라 고통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데, 이때 인간은 투자 결정을 할 때 점차 위험을 회피하려는 성향을 나타낸다. 개는 평소에 사람을 잘 물지 않지만, 아무리 과거에 애완견을 좋아했던 사람도 한번 개에게 물리고 나면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위험할 때 투자하면 그만큼 기대수익이 높다는 정보는 머리 속에서 잠시 머무르다가 사라지고, 불확실한 시기에는 ‘무엇보다 위험을 피하는 게 상책이 아닐까’라는 생각만 머리 속에 계속 맴돌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는 고민한다. ‘그냥 지금 매도해서 더 이상의 손실 위험을 피할 것인가’ 아니면 ‘당분간 없다고 생각하고 원금이 회복되기를 기다려 볼까’.
하지만 더 이상의 위험을 피해 바닥권에서 매도하건, 원금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환매하건, 결국 냉철한 이성보다는 불안한 심리 속에 복잡한 감정이 내린 선택이다.
투자를 망치는 심리 3- 집단심리
어떤 자산의 가격이 싸거나 비싸다는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그 자산이 가진 가치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투자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설사 자산의 가치를 알 수 있다고 해도 시장이 이를 반영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개인 투자자들은 가치 산정을 위해 분석을 하기보다 시장 분위기, 즉 집단심리에 따라 투자를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이 주식이나 펀드로 돈을 벌었다고 하면, 그 때서야 부랴부랴 시장에 뛰어든다. 인간 심리를 투자에 접목해 탁월한 수익을 낸 ‘역발상’ 투자의 대가 데이비드 드레먼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고독하게 살아가기에는 커다란 압력이 있다. 투자자에게는 집단 사고의 압력이 더욱 가해진다”고 지적했다.
실제 주식형 펀드의 증감 추이와 코스피 지수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서로 비례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2004년 1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코스피 지수와 주식형 펀드의 증감 추이(그림 참조)를 살펴보면, 주가가 급등할 때 주식형 펀드로 자금 유입이 급증하다가 주가가 하락할 때 유입이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펀드 투자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오히려 반대로 움직여야 한다. 지수가 하락할 때 펀드에 투자해서 반대로 오를 때 팔아야 한다. 이처럼 집단 심리는 사람들에게 비싸게 사서 싸게 팔게 하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분산 투자다. 자기과신 편견은 대부분 주식시장이 호황기일 때 나타난다. 자기과신 편견이 작동하면 인간은 과도한 자신감으로 인해 고점에 특정 국가나 특정 주식에 투자를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특정 종목이나 상품 또는 특정 국가가 유망해 보이더라도 너무 집중 투자하지 않고 적절히 분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적절한 분산 투자가 수익 창출에 효과적인 이유는 투자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어 잘못된 투자행동을 줄여주고 더 나아가 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적절한 자산배분은 투자자의 심리안정에 중요한 요소이다.
둘째, 나눠서 사고 나눠서 팔자. 주식시장은 여러 호재와 악재 때문에 급변동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이러한 급변동은 대부분 짧은 기간에 발생하고 시간이 지나면 주식시장은 적정수준으로 안정을 찾게 마련이다. 투자자들도 주식시장이 급변동할 때는 불안감 때문에 잘못된 투자 결정을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냉정함을 되찾곤 한다. 적절한 투자시점을 찾기 어렵다면 나눠 사고 나눠 파는 게 차라리 합리적인 투자방법이 될 수 있다.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적립식 투자다. 적립식이 곧 분할매매를 뜻하기 때문이다.
셋째,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를 갖자. 투자에 있어 진정 필요한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위험 요소를 파악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에는 지나치게 중요성을 부여하고 원하지 않는 정보는 무의식 중에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주식을 매수하려고 할 때는 나의 반대편에서 매도하는 투자자가 어떤 이유로 매도하는지 고민해 보자.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해 급하게 매수하거나 매도하는 잘못된 투자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
넷째, 목표 수익률을 미리 정하고 투자하자. 2008년 11월 당시 한 펀드 투자자 조사에서 향후 펀드를 환매하려는 이유 1위는 ‘기대되는 수익률이 부정적이어서’로 조사됐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조사 시점부터 최근까지 오히려 수익이 발생했다. 원금손실이라는 실패의 기억이 투자자의 목표 수익률을 원금수준으로 낮춰버리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목표 수익률을 정하고 이를 반드시 지키는 투자 습관이 필요하다.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손수진 선임연구원
■ 군중심리와 주식시장
한 겨울에 스케이트를 타러 가까운 저수지를 찾은 사람이 있다. 저수지를 향해 가면서 '얼음이 깨지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도착해보니 저수지가 큰 둑을 사이에 두고 두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오른쪽 A저수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즐겁게 놀고 있는 반면, 왼쪽 B저수지에는 두 세명 정도 밖에 보이지 않는다.
스케이트를 타기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저수지가 좋지만 왠지 불안해 보인다. A저수지에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 더 안전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자연스럽게 A저수지 얼음 위에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난다. A저수지에 사람이 늘어날수록 새로 저수지로 놀러 온 사람들은 B저수지에 있는 사람들이 불안해 보이고 A저수지 쪽을 향하게 된다.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A쪽에 사람들이 많이 모일수록 얼음이 깨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A쪽에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 위의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며 군중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심지어 B얼음 위에 사람들이 불안해 보이기 시작하고 B얼음 위의 친구를 큰소리로 불러 A얼음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이와 같이 여러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였을 때 개개인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대중들이 하고 있는 행동을 따르게 되는 것을 '군중심리'라고 한다. 투자 결정에 있어서 군중심리를 따르는 경우 대부분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역사상 모든 투기 열풍과 소멸의 과정에서는 반드시 군중심리가 작용했다. 1980년대 일본의 주식ㆍ부동산 시장 거품, 90년대 말 미국의 인터넷 거품,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세계적 부동산 붐 등에서 군중심리는 가격 폭등과 폭락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즐거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다는 게 심리학자들의 견해다. 그러나 투자에선 그렇지 않다. 투자에선 때로 자기 자신을 고독한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투자 수익이란 어쩌면 고독함을 이긴 대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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