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상(1910~1937)의 탄생 100주년인 올해 그를 재조명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의 ‘木3氏의出發(이씨의 출발)’전은 이상의 생애와 예술세계에 대한 자료를 보여주는 아카이브 전시의 성격을 띠는 동시에, 현대미술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이상의 흔적도 짚어보는 입체적 전시다.
전시장 1층은 문학과 건축, 디자인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든 모더니스트 이상을 다각도로 비추는 자리다. 이상이 표지를 디자인한 학회지 ‘조선과 건축’ 1930년 2월호, 그의 시 ‘권태’가 실린 신문,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그렸던 삽화 등 이상 관련 자료 150여 점이 모여있다. 이상이 처음으로 쓴 동시 ‘목장’을 싣고 표지까지 디자인한 월간지 ‘가톨릭 소년’ 1936년 5월호는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상의 친구였던 화가 구본웅을 비롯해 김환기, 유영국 등 한국의 대표적 모더니즘 미술가들의 회화는 한국 미술 속의 모더니즘을 보여준다.
2층에는 현대미술 작가들이 이상을 모티프로 제작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28세의 작가 차지량씨는 늦은 밤 젊은이 70여명이 옥상에 모여 벌이는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 작업 ‘미드나잇 퍼레이드’를 내놨다.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천재 이상이 느꼈던 정체성의 혼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를 88만원세대의 고민과 연결시킨 작품이다.
정연두씨는 공연과 영상, 미술의 경계를 오가는 ‘시네매지션’을 통해 이상의 에세이 ‘실낙원’을 새롭게 해석했다. 사진과 플라스틱, 나뭇가지 등을 사용해 낙원을 형상화한 세트와 그 세트를 비추는 영상을 함께 설치해 관람객들이 영상 작품의 주인공이 되도록 만들었다. 정영훈씨의 미디어아트 ‘익명의 서사시’에는 이상의 얼굴 이미지 위로 이상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단어들이 떠다닌다. 관람객들이 도구를 이용해 화면 위 단어를 조합해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 작품이다.
관람객들의 모습을 비추는 커다란 거울 위에 적힌 시 ‘거울’, 조금씩 기울어진 형태로 이뤄진 전시장 내 구조물 등 공간 자체도 이상을 느낄 수 있도록 꾸며졌으며, 이상의 작품을 소재로 한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과 ‘금홍아 금홍아’도 상영된다. 10월 1일에는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가 ‘이상과 모던 건축’을 주제로 강연한다. 전시는 10월 13일까지. (02)760-4850
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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