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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내 나이 백이십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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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내 나이 백이십 살

입력
2010.09.2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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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은영

비행기가 밤하늘을 건너가고 있었다

저건 홋카이도로 가는 비행기예요

당신은 순수하게 말했다

다정하고 시원한 여름밤이었다

나는 중얼거렸다

고통이 얼굴을 까맣게 만들어놓아도

또 고무줄처럼 주욱 늘어나는 숨줄

멀쩡한 머리만 있고 손에 미친 가위가 없다면

어디나 지옥이지

우리들의 머리 위에 아름다운 별들의 지도

당신은 지옥을 빠져나와 영영 일곱 살을 얻었는데 나는 지옥을 나오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순식간에 나이를 먹는다

별들 사이로 두번째 비행기가 지나갔다

당신은 탄성을 질렀다

맑고 잔잔한 바람이 그 사이를 지나갔다

이제 나는 백이십 살, 세상에 놀랄 일이 없어졌어

그래서 모든 게 싱싱하고 예뻐 보여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 같은 당신이 있고

풀벌레가 하루치의 마지막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는 당신의 어깨에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객실이 다 찼어요 붉은 등을 걸어놓은 것 같은 오늘밤의 별을 보며

자기 몫의 등을 켜고 묵묵히 서 있는 집들의 깊고 등 시린 침묵

그러나 우리는 등을 켜고 영원히 떠돌려고 한다

건너가고 건너옴이 존재이유인 비행기처럼

한없는 허공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짧은 여름밤이었다

● 다음은 록펠러대학교의 세포생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군터 블로벨의 말입니다. "생명의 연속성이라는 점에서 보면 스무 살이라느니, 서른 살이라느니, 마흔 살이라느니 하는 말들은 모두 잘못된 겁니다. 우리들의 나이는 35억 살입니다."

또다른 과학자인 스탠리 밀러는 자연적으로 아미노산이 생명체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이렇게 추측했습니다. "10년은 너무 짧을 테니 100년이라고 합시다. 그러나 1만 년이나 10만 년도 괜찮을 것 같군요." 시간이라는 건 뭐고, 나이라는 건 또 뭔가요? 10만 년 정도 산다면 괜찮을까요? 35억 살이라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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