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한 유머에서 괴기, 공포까지 초가을 연극 무대를 '엽기'라는 시대 코드가 접수한다. 불쾌감으로 귀결되기 일쑤인 하드고어 호러 류와는 명백히 선을 긋는다.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는 무대의 표정은 객석에 생각을 요구한다.
파파프로덕션의 '우먼 인 블랙'은 무대가 줄 수 있는 공포의 가능성을 극한으로 시험한다. 자신을 옭아매는 공포의 기억에서 탈출하려는 여인이 그 기억을 근거로 연극을 만든다. 그러나 극히 사실적인 장치 등 실제보다 더 현실적인 무대 효과로 인해 더욱 끔찍한 경험으로 빠져든다.
1987년 영국 작가 수전 힐의 원작을 무대화한 뒤 현재까지 웨스트엔드에서 24년째 흥행의 길을 걷고 있는 작품이다. 국내에서 '우먼 인 블랙_J'라는 제목으로 2004년 공연됐던 이 작품은 당시 주인공을 맡았던 홍성덕이 같은 역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내년에는 영화로도 개봉될 예정이다. 이현규 연출, 이용환 등 출연. 11월 21일까지 샘터파랑새극장 2관. (02)747-2070
파파프로덕션은 또 현대인의 강박증을 소재로 검은 유머를 쏟아내는 '닥터 이라부'라는 독특한 코믹극도 선보인다. '버라이어티 메디컬 쇼'라는 부제를 단 이 무대는 극장을 찾은 관객들을 강박증 환자로 본다. 외모, 스펙, 자기계발, 섹스 등 한국인들을 얽매는 심리적 올가미에 대한 처방을 내리고 춤과 노래 등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오쿠다 히데오 작, 이종훈 연출, 김기환 박현경 등 출연. 11월 26일까지 행복한극장. (02)747-2070
'기묘한家?'라는 작품으로 우스꽝스런 공포라는 코드를 전면에 내세워 장기 공연중인 극단 노는이는 보다 무르익은 무대 '두 여자'를 선보인다. 가족에 의해 정신병원에 수감된 큰딸의 혼령이 나타나 모든 가족을 정신적 공황 상태로 몰고 가 파멸시킨다는 줄거리. 공포와 웃음이 기이하게 공존했던 전작의 표정을 관리한 셈이다. 영상 속 장면과 배우의 실연이 절묘하게 맞물리는 등 객석에 '혼합 미디어(mixed media) 연극'이라는 재미를 안겼던 이 극단의 기술이 더욱 성숙하고 있음을 보여줄 무대다. 12월 31일까지 라이프씨어터. (02)742-3577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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