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국가의 모든 통치작용이 헌법 규정대로 이뤄지는 입헌주의 국가이다. 영국의 케네드 위어(K. C. Wheare) 교수는 에서 입헌주의의 최소한이 법치주의라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제시한 '공정한 사회' 의 기본 틀은 대한민국의 최고 법이자 기본법인 헌법에서 찾을 수 있고, 법 규범 체계상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헌법은 전문에서 '정의ㆍ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천명했다. 공정한 사회의 가장 뚜렷한 근거는 바로 헌법 조항이다.
헌법의 궁극적 목적은 모든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보장이다. 모든 국민이 존엄과 가치를 최대한 누릴 수 있을 때 가장 공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헌법은 여러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 또한 기본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 수단으로 통치권인 입법권과 행정권, 사법권의 분립과 상호 견제ㆍ 균형을 분명히 하고 있다. 통치권은 기본권 보장을 위해 발동될 때만 공정한 사회의 기반을 이룰 수 있다.
공정한 사회로 가기 위한 우리의 법치 인식의 현주소는 어떤가. 먼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입법권을 행사해 좋은 법을 만들어야 할 국회의 역할부터 의심스럽다. 여야가 얼마 전 제정한 국회의원평생연금법은 단 하루만 국회의원을 지내도 65세 이후 다달이 120만원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연금이 월 9만원인 데 비해 지나치게 많다.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이익을 챙기는 입법에 힘을 기울이는 한 공정한 사회는 아득하다. 국회는 하루빨리 이 법을 개정하든가 폐지해야 한다.
기본권 보장을 위한 행정부의 엄정한 법 집행도 의문투성이다.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처럼 자기 친인척을 위해 공권력을 행사하는 한 공정사회의 튼튼한 틀을 짤 수 없다. 집회와 시위, 환경사범 단속 등에도 선거를 의식해 엄정한 법 적용을 회피하고 있다. 최저임금제 위반사례가 1만 건 이상인데도 형사처벌을 받은 사례가 거의 없을 정도인 것도 노동위원회의 무른 잣대로 비친다. 나아가 대통령이 불법을 저지른 대기업 총수나 정치인들을 위해 특별 사면권을 남용하는 것도 공정사회와 어울리지 않는다. 사면권 남용은 국민에게 준법은 손해라는 인식을 심어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든다.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의 역할도 막중하다. 그러나 삼성 비자금 사건 등에서 보듯 '유전무죄' 는 사법 불신을 키웠다. 사회적 약자 보호가 어렵고, 사회적 강자만을 위한 불공정을 사법부가 방조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길 없다.
공정한 사회는 법치주의를 저해하는 요소를 제거, 법을 지키면 손해가 아니라 지킬수록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인식의 전환을 기초로 성립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부터 법을 지키고 엄정하게 집행함으로써 헌법의 궁극적 지향점인 모든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는 기초로 삼아야 한다. 그런 노력을 통해 이 땅에 진정한 법치주의를 활짝 꽃 피우는 초석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고문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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