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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靑巖弘酒(청암홍주)의 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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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靑巖弘酒(청암홍주)의 내력

입력
2010.09.2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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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모시고 대작을 했습니다. 스승께 가르침을 받던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가버렸지만 여전히 꼿꼿하셨습니다. 큰 바위처럼 빈틈이 없는 스승의 앉음새를 보며 '오늘도 KO 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승께서 제게 처음 술을 권한 날이 또렷하게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체육대회에서 우리 학과가 종합우승을 했습니다. 배구선수로, 릴레이선수로 뛰었던 신입생인 제게 스승은 은빛으로 빛나는 우승컵 그득하게 막걸리를 부어주었습니다. 스승이 주신 잔이기에 저는 그 큰 잔을 다 비웠습니다. 그리고 캠퍼스 잔디밭 위에서 기억의 끈이 풀어져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스승은 제 앞에 놓인 맥주잔에 소주를 반쯤 부어주었습니다. 나머지 반에는 양주 아니면 맥주가 부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당근주스를 채우는 것이 아닙니까. 소주와 당근주스를 섞어 마신다 해도 후폭풍이 있을 것이라 걱정했는데, 결과는 새로운 '명주'를 만났습니다.

마시기 편하고 취기를 꾹꾹 눌러주는 스승의 명주로 하여 아주 기분좋게 취했습니다. 동석한 한 선배는 맑은 술만 고집했는데 스승과 저의 취기가 도도해질 무렵 취해 잠들어 있었습니다. 다음날에도 숙취와 두통에 전혀 부대끼지 않았습니다. 저는 올해 일흔넷인 스승의 호를 빌려 그 술 이름을 '청암홍주(靑巖弘酒)'라 명명했습니다. 풀이하자면 '청암 스승의 너그러운 술'이란 뜻입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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