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은 유독 습하고 더웠다. 성한 사람들도 견디기 어려운 여름이었으니 어머니는 오죽 했을까. 신부전으로 9년 전부터 1주일에 세 번씩 혈액 투석을 해왔고,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된 지 1년 반이 됐다. 밥을 씹어 삼킬 기력이 없어서 유동식에 의존했으며 심심찮게 중환자실을 들락거리던 것이 당시 어머니의 건강 성적표였다.
휠체어 밀며 발견한 아름다움
나날이 쇠약해지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죽음은 한 순간에 들이닥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나뭇잎이 붉게 혹은 노랗게 물들어가는 것처럼 어머니도 조금씩 저 세상의 빛깔로 물들어갔다. 이런 어머니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이 자식으로서 어머니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하루는 혈액 투석을 마친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가을을 느꼈다. 숨이 막힐 것 같던 뜨거운 바람과 피부에 내리쬐던 따가운 햇살이 아니었다.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아파트 단지에 있는 공원으로 갔다. 아직 8월 중순이었는데도 한낮의 공원은 완연한 가을이었다. 계수나무는 우듬지부터 노랗게 물들었고 하늘은 동해 바다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깊고도 파랬다. 부드러운 바람은 또 얼마나 상쾌했던가!
공원을 한 바퀴 도는 동안에 어머니는 예정보다 앞서 찾아온 가을을 두 눈으로 찬찬히 음미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계절을 즐기시는걸 방해하지 않으려고 휠체어를 조심스럽게 밀고 다녔다. 그렇게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어머니는 힘겹게 한 마디 하셨다. '참 좋구나.'
오랜만에 어머니의 환해진 얼굴을 보면서 나는 미리 찾아온 가을에게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정말 고맙다.' 어머니가 이 아름다운 계절을 조금이라도 더 맛볼 수 있도록 공원을 한 바퀴 더 돌았다. 어머니는 세상에 다시 태어난 듯이 어린 아이의 얼굴을 하고 가을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머니에게 이 가을은 일흔 다섯 번째 맞이하는 가을이 아니었다.
나도 어머니를 따라 아이의 눈으로 가을 공원을 바라보았다. 나무와 풀은 물론 사람들과 운동기구마저도 가을 햇살을 받아서 반짝였다. 누군가가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것보다 더 고마운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할 만큼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1주일 뒤에 어머니는 생명의 빛깔이 다 바랜 나뭇잎이 되어 이승의 나무에서 떨어져 내렸다. 연락을 받고 서둘러 서울에 있는 형 네 집에 가보니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1주일 전처럼 환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어머니는 이 아름다운 세상에 왔다 가는 것이 축복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감으셨던 것 같다. 나는 곱게 물든 계수나무 이파리를 어루만지듯 어머니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내 깨달음 위한 마지막 헌신
이번이 어머니를 잣나무 아래 묻고 온 뒤로 맞이하는 다섯 번째 가을이다.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 보았던 그 가을날의 풍경이 떠오른다. 나는 더위에 지친 사람들 앞에 구원병처럼 나타나는 가을 같은 사람은 되지 못할 지라도, 가을이 올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여름을 견디는 사람이 되거나, 이르게 오든 더디게 오든 여름의 끝에 찾아오는 가을을 고마워하며 가을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는 사람이 되려 한다.
어머니와 함께 그 해 가을을 보기 전까지 나는 가을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알지 못했다. 살아야 하는 이유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날 내가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있는 동안 어머니는 내 깨달음의 수레바퀴를 밀고 계셨다. 온 몸으로, 마지막 힘을 다해서.
권정우 시인ㆍ충북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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