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둥팡 지음ㆍ문현선 옮김/돌베개 발행ㆍ647쪽ㆍ2만3,000원
수많은 야심가, 지략가, 용맹무쌍한 장수들이 천하쟁패를 했던 중국의 삼국시대는 풍부한 드라마적 요소를 품고 있다.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이 시대는 송대의 역사가 배송지가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 주석을 단 '삼국지 주'를 낸 이래 명대 나관중의 역사소설 '삼국연의', 2000년대 중반 '삼국지'에 대한 교양강좌로 일약 스타 교수로 떠오른 이중톈의 까지, 끊임없는 후대의 해석과 변용이 이뤄졌다.
1930년대부터 베이징대, 칭화대에서 역사와 철학을 강의했고 은퇴한 뒤 미국에서 중국사 집필에 힘썼던 중국 역사가 리둥팡(1907~1998)의 는 또 하나의 읽을만한 '삼국지' 해설서다.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부터 그가 충칭, 난징, 쿤밍 등 중국 전역에서 진행했던 강연에 해설을 덧붙였다.
리둥팡은 유비, 손권, 조조 등 당대의 영웅들을 중심에 놓고 38개의 테마로 그 시대를 꿰뚫었다. 대중강연을 책으로 엮었지만 흥미 위주가 아니라 사실관계를 중시하는 꼼꼼한 역사가의 시각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것이 관우, 제갈량, 장비 등 주요 인물에 대한 사실관계의 정정이다.
예컨대 장비의 경우 소설이나 경극 등에서 무예만 뛰어나고 학식은 부족한 인물로 정형화돼 있지만 저자는 그것은 오류라고 바로잡는다. 정사에 따르면 실제의 장비는 부유한 집안의 자제로 글씨를 잘 썼고 문인화 그리기가 평생의 취미였던 교양있는 인물이었다.
관우가 다섯 개의 관문에서 여섯 명의 장수를 베고 탈출했다는 유명한 오관참장(五關斬將) 고사 역시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조조가 탈출하려는 관우의 뒤를 쫓지 말라고 명령했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이라는 것이다. 삼국 정립의 분수령이 된 적벽대전에서의 제갈량의 공로도 재평가된다.
소설에서는 적벽대전의 승리를 제갈량이 동풍을 불러와 불화살로 조조군을 궤멸시킨 화공(火攻)전략 때문이라고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 승전의 원동력은 바람이 아니라 인화력 강한 건초 실은 배를 조조군에 접근시킬 수 있었던 수력 덕분이라고 해석한다.
주로 소설이나 TV드라마 등을 통한 이런 식의 역사왜곡에 대해 리둥팡은 거침없이 반감을 드러낸다. "이 분들은 '문화예술'이라는 글자를 면죄부처럼 내밀며 옛사람들을 제멋대로 평가하고 지금 사람들을 속일 특권이라도 지닌 양 전횡을 저지릅니다. 옛 사람은 이미 죽어 항의할 방법이 없고, 지금 사람은 사기를 당해 뭘 모르니 후환이 무궁합니다."
'세설삼국(細說三國)'이라는 책의 원제목처럼 삼국시대의 인물과 사건에 대한 상세하고 정확한 역사적 사실의 전달은 중국,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영원한 고전으로 꼽히는 '삼국지'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도와준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