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없는 부모를 둔 죄? 저소득층 학생들 출발선부터 '낙오자'
개천에서 용이 나게 하고, 빈곤의 세습을 방지하고, 신분 상승을 유발하는 동력은 교육이다. 불과 5~6년전만 해도 교육이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영향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서울대 신입생들의 부모 직업을 보면 '불공정한 교육'의 일단을 파악하기가 어렵지 않다. 1998년 서울대 신입생 부모의 직업은 관리직, 전문직, 사무직 등 화이트컬러 계층의 비율이 66.1%, 농어민과 생산직, 무직자의 비율은 18.3%였다.
12년이 흐른 2010년, 상황은 급변했다. 경영관리직, 전문직, 사무직 비율은 73.7%로 늘어난 반면 농어민과, 비숙련노동자, 무직자의 비율은 3.9%로 급감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지역균형선발 전형이 없었다면 화이트컬러 부모를 둔 신입생 비율은 더 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이 교육에서 희망을 찾을 때 공정한 사회가 가까워진다"고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공정성 도마에 오른 입학사정관제
입학사정관제는 현 정부 교육 정책의 핵심이다. 성적 위주의 평가에서 벗어나 잠재력과 창의력이 반영된 다면적이고 종합적인 평가를 하게되면 사교육비가 줄고 낙후된 교육 환경 속에서 나름의 성취를 이룬 저소득층 학생들에게도 진학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게 정부의 기대였다.
그렇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객관적인 점수가 아닌 정성적 평가를 통해 뽑고 싶은 학생을 선발토록 했으나 대학들은 학과 공부에 적합한 학생 대신 소위'스펙'이 좋은 우수학생들을 독점하는 데 전형을 악용하고 있다. 객관적 기준이 없어 대학과 입학사정관의 도덕성에 대입의 공정성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 초래한 결과다.
사실상의 고교등급제 적용도 논란이다. '빅3대학'의 하나인 고려대는 2009학년도 수시모집에서 특수목적고나 명문고 출신 학생을 우대한게 법원에 의해 인정돼 파장을 낳았다. 올해 대입 전체 정원의 62%를 선발할 정도로 수시모집은 계속 비중이 커지고있고, 입학사정관 전형도 수시의 14.6%를 차지할 만큼 확대되고 있지만 공정성 확보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찍힌다.
주요 대학들도 입학사정관 전형을 특목고와 외국 소재 고교 출신 학생들의 입학 통로로 활용하면서 '순진한' 교육당국을 비웃고 있다. 지난해 입시에서 성균관대는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뽑은 754명 가운데 492명(65.3%)이 특목고 또는 외국 고교 출신이었다. 이화여대(52%) 연세대(37.7%) 중앙대(33.2%) 한국외국어대 (23.7%) 건국대(21.7%) 등 주요대학의 입학사정관 전형 합격자 중 특목고 및 외국 고교 출신들도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전국 고교생 가운데 특목고생의 비율이 1.57%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대학들의 특목고 우대는 심각한 수준이다.
학생들의 잠재력을 키우는 교육 대신 선발 효과를 누리려는 대학들의 우수 학생 선점 경쟁이 결국 입학사정관 전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동훈찬 전국교직원노조 정책실장은 "대학의 입시 관리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상황에서 정부가 입학사정관 전형을 전면화하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자율고가 낳은 고교 피라미드
"최상위권 학생들은 특목고에 갑니다. 그 다음 상위 10~20%는 자율형사립고(자율고)로 진학해요. 나머지가 일반계고 몫입니다. 일반계고에선 상위권 학생도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는 게 쉽지 않은 이유이지요."서울의 일반계고인 A고 김모 교장의 설명이다.
대학 뿐만 아니라 고교에도 서열이 뚜렷하게 존재한다. 맨 위 꼭지점엔 별도의 전형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특목고가 있고, 그 아래 내신 상위 50% 가운데 추첨을 통해 선발하는 자율고가 있다.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엔 일반계고가 자리잡는다.
이때문에 자율고의 확대를 골자로 하는 정부의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는 학생을 계층별로 나누고, 대다수 일반계고를 소외시키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제적인 부분은 더욱 큰 문제다. 외국어고의 1년 학비는 600만원선이며, 자율고는 500만원 수준이다. 일반계고의 등록금은 145만원으로 자율고의 3분의1이다. 가난한 학생들은 성적이 좋아도 학비가 비싼 외고나 자율고에 다니기 힘든 구조다. 정부는 자율고에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20% 입학시키도록 했지만 학비를 제외한 기숙사비 책값 등 각종 경비만 수백만원이 들어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 교육 공정성의 敵 사교육비
교육의 공정성을 방해하는 적(敵)들은 많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사(私)교육비야 말로 교육을 불공정하게 하는 최대의 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수록 저소득층 학생들은 경쟁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빈부 격차→ 사교육 격차→ 불공정한 교육 경쟁'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성적이 상위권일수록 1인당 사교육비와 사교육 참여율이 높다. 교육과학기술부자료에 따르면 9월 현재 성적이 상위 10% 이내 학생은 1인당 사교육비로 월 31만9,000원을 쓰는 반면 하위 20%는 13만9,000원을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위 그룹의 사교육비가 하위 그룹의 2배 이상이다.
사교육 참여율도 큰 차이를 보였다. 상위 10% 이내의 학생은 87%가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하위 20%는 50.4%만 사교육에 참여했다.
가구 소득에 따른 사교육비 격차는 더욱 심했다. 월평균 소득이 700만원 이상인 계층은 51만4,000원을 지출했으나 100만원 미만인 계층은 6만1,000원으로 무려 9배의 차이가 났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 탓인지 정부의 사교육비 공포감도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대책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양상이다. 각종 사교육비 절감 대책을 쏟아내고 있으나, 오히려 새로운 사교육 시장만 키워주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창의력과 잠재력 등 다양한 전형 요소가 반영되는 입학사정관제가 사교육비 절감의 '구원투수'로 등장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생소한 전형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혼란을 부추겨 이를 겨냥한 수백만원대의 고액 컨설팅 시장이 형성됐고, 자기소개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대필 업체까지 등장했다. 입학사정관 전형이 요구하는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면 필연적으로 비용이 들어가고, 결과적으로 소득이 높은 계층만 유리하게되는 구조가 고착화한 것이다.
서울 A고에서 진학지도를 담당하는 이모 교사는 "소외계층 학생의 잠재력을 찾아내는 전형으로 입학사정관제를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 불공정 논란 입학사정관제 대책은
본격 시행 2년째를 맞는 입학사정관제가 최근 불공정 논란에 휩싸이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대동소이하다. 입학사정관제 선발 기준과 절차를 사회가 납득해야 공정성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욱연 서강대 입학처장은 "학업성취도 외 다른 능력도 보자는 게 입학사정관제 취지이지만 학업은 제쳐놓고 다른 능력만 보는 것으로 오해하는 측면이 많다"며 "학생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지표들이 하루속히 개발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경범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교수는 "입학사정관의 부도덕적인 부분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식으로 절차 자체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호 중앙대 교수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는 "입학사정관의 부도덕한 행위를 막으려면 윤리 교육을 강화해야 하고, 각계의 청렴한 인사를 입시에 참여시키는 방안 등도 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대입 전형을 어떤 계층에 얼마의 몫을 배분하느냐의 복지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한 입시의 공정성 시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학 서열화 타파가 입학사정관제 공정성 시비 해소책이라는 시각도 있다. 강제상 경희대 입학관리처장은 "기업들이 개인의 역량보다 출신 대학을 보고 신입사원을 뽑는 관행이 계속되는 한 대입 문제는 종식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입학사정관제가 정착하려면 학교 및 학과 서열화 분위기부터 개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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