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지막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정조(1752~1800)의 죽음과 함께 19세기도 시작됐다. 그러나 오랫동안 한국사에서 19세기는 망국의 길을 재촉한 정체(停滯)의 시대로 인식돼 왔다. 그런 이유로 관심 밖에 방치돼 있던 19세기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다. 주목받지 못했던 이 시기의 문인들을 발굴하는 작업, 영ㆍ정조 시대의 개혁적 지향이 19세기에도 계승ㆍ발전됐음을 밝히려는 학계의 연구가 활발하다.
다산 이후 세대 재조명, 19세기 문학사 새로쓰기
최근 몇년간 연암 박지원(1737~1805)과 '연암학파'로 불리는 박제가(1750~1805) 이덕무(1741~1793) 유득공(1748~1807) 등은 집중 연구대상이 됐다. 이들 18세기 문인들의 삶과 문학에 대한 학문적 접근은 깊이와 다양성 면에서 풍성한 결실을 맺고 있지만, 대조적으로 19세기에 대한 문학사적 관심은 소흘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다뤄진다고 해도 그나마 다산 정약용(1762~1836), 추사 김정희(1786~1856), 최한기(1803~1877) 등 특정인들에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던 것이 최근 문학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19세기는 블루오션"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19세기 문인들의 자료가 정리되면서 그들의 문학적 역량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이 다산을 학문적으로 계승한 후손과 그 제자 9명의 문집 등 자료를 정리한 (2008)을 발간한 것은 19세기 문학사, 학술사 연구의 토대를 마련한 작업으로 평가된다. 여기 수록된 인물 중 다산의 장남 정학연(1783~1859)과 아전 출신으로 다산의 유배시절 애제자였던 황상(1788~1863)은 개성적인 문학세계뿐 아니라 '다산학'의 전파라는 관점에서 주목받는 인물. 두 사람은 추사와의 교유도 깊었는데 다산과 추사라는 두 거인 사이의 학문적 교섭이라는 측면에서 학계의 주요 관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문학사 연구의 시야도 넓어지고 있다. 추사의 애제자였던 조면호(1803~1887)는 조선의 언어로 조선의 현실문제에 천착한 18세기 실학파 문학의 문제의식을 계승한 인물. 5,000여 수의 방대한 작품을 통해 '19세기 조선시풍'을 구현한 시인으로 꼽힌다. 이밖에 남녀간의 성애를 다룬 19세기 희곡 '북상기'와 '백상루기'의 발굴도 의미있는 학문적 성과로 꼽힌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자신이 발굴한 희곡 '북상기'를 일반인들에게 소개하는 교양서를 연내 출간할 예정이다.
정우봉 고려대 국문과 교수는 "문학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20세기 근대와의 연관 속에서 19세기를 적극적으로 해명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싹트고 있다. 다양한 19세기 작가를 발굴해 그들의 문학관과 시대인식을 밝히려는 연구가 서서히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실증적 연구로 19세기 역사의 재해석 시도
역사학계에서는 정조의 죽음 후 조선은 혼란을 거듭하다 결국 자멸했다는 '19세기 암흑시대론'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유봉학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는 지난해 펴낸 에서 19세기 정국을 이끌고 세도정치를 편 것은 남공철, 심상규 등 정조가 총애하던 시파 관료와 그 후예들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를 통해 정조와 정치적 대립관계였던 보수적인 노론벽파들의 세도정치로 조선이 와해됐다는 19세기 암흑시대론에 비판을 가했다.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리더십연구소 연구실장은 1800~1863년의 세도정치기를 분석한 4년 간의 연구 프로젝트를 최근 마무리했다. 그는 조선왕조실록을 면밀히 분석, 순종~철종 연간 세도정치기의 정치운영 방식과 대외관계를 살폈다. 19세기 세도정치세력이 무조건적인 쇄국주의자들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동향을 샅샅이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 세도정치기에 언로가 경색된 근본 원인을 정조 후반기의 정국 운영으로부터 따지는 등 새로운 시각으로 19세기 정치사를 조망했다. 연구결과는 이라는 제목으로 곧 출간될 예정이다.
연암의 손자로 문학뿐 아니라 정치, 사상 등 다방면에서 폭넓은 활동을 보여준 환재 박규수(1807~1876)에 대한 재조명도 특기할 만하다. '연암집'의 번역자인 김명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2008)에서 '열하일기'에 집대성된 연암의 사상적ㆍ문예적 성과가 평안감사, 우의정 등 고위 관직을 지낸 박규수를 통해 어떻게 19세기 현실정치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했다.
유봉학 교수는 "역사학계에서는 조선의 마지막 증흥기였던 정조시대의 흐름이 어떻게 계승, 발전됐으며 어떻게 진전 또는 굴절됐는지를 사실적으로 살피는 작업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 최근 19세기 연구는 이런 공감대의 산물로, 앞으로 더욱 다양한 연구가 진행돼 19세기 연구사의 공백이 메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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