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범죄 현장을 뛰는 경찰서 강력계 형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박은영(36) 경사는 지난해 7월 4일 경기 시흥경찰서 강력5팀 사무실에서 옷을 갈아 입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당시 박 경사가 소속된 팀은 관내 살인사건 때문에 연일 야근 강행군을 하던 때였다. 진단 결과는 뇌경색.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오른쪽 뇌 수술을 받았지만 우뇌와 연결된 왼쪽 반신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185㎝의 키에 운동으로 다져진 박 경사지만 병마에는 어쩔 수 없었다. 1998년 순경으로 시작해 10년여 간 경찰을 천직으로 여기고 열정을 쏟았던 그의 인생은 무너져 내렸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앞으로 박 경사의 불행을 감싸고 보호해줄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20일 오후 경기 군포시 부곡동에서 만난 박 경사는 친형 은도(40)씨에 의지한 채 간신히 서울의 한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박 경사는 현재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형 이외에는 딱히 그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 그의 친동생(32)은 6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지체장애인이 됐고, 부인은 2002년 아들(8)을 낳은 직후 세상을 떠났다. 환갑을 훌쩍 넘은 어머니(65)는 박 경사의 아들과 동생을 돌보기에도 버거운 상황이다.
뇌경색은 공상처리가 됐지만 회복 치료를 하느라 지출한 병원비가 지난 한해에만 1,400만원이 됐다. 당연히 경제적 상황이 심각할 수밖에 없다. 형 은도씨는 “쓰러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지만 회복되기까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 지 알 수 없다”며 “의사들도 완치에 대해서는 장담을 못하고 있어 걱정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동료들의 관심과 도움은 박 경사에게 가장 큰 버팀목이다. 수시로 찾아와 위로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적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이날 오전에는 도내 동료 경찰들의 마음이 담긴 성금 1,000만원이 박 경사에게 전달됐다. 경기지방경찰청은 한국일보와 국민은행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내 고장 사랑운동을 통해 적립된 금액에 도내 경찰들이 모은 자투리 급여를 합해 이 성금을 마련했다. 박 경사는 “동료들에게 너무나 큰 은혜를 입었다. 다시 복귀해서 함께 근무할 그 날을 위해 더욱 열심히 재활치료를 하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경기경찰청은 박 경사 외에도 지난해 9월 간암진단을 받은 뒤 힘겹게 병마와 싸우고 있는 이천경찰서 정보통신계 임광복(55) 경위에게 내고장 사랑기금에 자투리 급여를 합쳐 성금 1,000만원을 전달했다. 이로써 올해 4월 말 기금을 전달한 부천남부서 최종훈(48) 경사를 포함해 내고장 사랑운동을 통해 동료들의 따뜻한 마음을 받은 투병 경찰관은 세 명으로 늘어났다.
이강덕 경기경찰청장은 “매년 불우이웃을 돕는다면서도 정작 조직 내부에 대한 관심이 소홀했다”며 “어려움을 겪는 투병 경찰 동료들에게 힘을 보태는 데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군포=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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