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볼을 치고 1루로 전력 질주할 때 가장 행복했다"는 그는 마지막 타석에서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1993년 4월10일 대구 쌍방울과의 첫 타석에서 프로 데뷔 안타를 신고했던 '기록의 사나이' 양준혁(41ㆍ삼성)이 2010년 9월 19일 대구 SK전에서 2루수 앞 땅볼로 18년 프로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날 은퇴경기에서 7회까지 3연타석 삼진에 그쳤던 양준혁은 9회 마지막 타석에서 선두타자로 출전해 SK 송은범을 상대로 2루 땅볼로 친 뒤 '마지막' 전력질주로 현역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프로통산 성적은 2,135경기 출전에 타율 3할1푼6리 2,318안타 351홈런 1,389타점. 그는 이제 방망이를 내려 놓았지만 당분간 깨지기 힘든 대기록들이다.
이날 경기가 끝난 후 대구 구장 조명탑이 모두 꺼진 가운데 단상에 오른 양준혁은 고별사를 통해 "야구선수로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물론 선수로서 힘든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힘들었던 순간도 바로 행복이었습니다"며 "지금까지 양준혁에게 베풀어주신 따뜻한 사랑과 뜨거운 성원, 대한민국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제게 주신 여러분의 응원 잊지 않겠습니다. 뼛속 깊이 새기겠습니다. 대한민국 프로야구 파이팅"을 외쳤다.
맑았던 하늘도 '살아 있는 전설'을 떠나 보내는 게 슬픈 듯 갑자기 비를 뿌렸고, 고별사를 읽던 양준혁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등번호 10번을 달고 삼성 프랜차이즈의 최고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양준혁.
삼성 구단은 양준혁이 파란 피가 흐르는 영원한 사자라는 점을 고려해 은퇴경기를 '블루 블러드 인 넘버 10'으로 정했다. 양준혁은 경기 전 시타자로 타석에 들어섰고, 아버지 양철식(75)씨는 시구자로 나서 아들의 마지막 고별 무대를 함께 했다.
2007년 4월 10일 데뷔전에서 양준혁에게 홈런을 맞았던 SK 선발 김광현은 1회 2사 후 양준혁이 타석에 들어서자 모자를 벗어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갖췄다. 양준혁은 김광현에게 1, 4, 7회 세 타석 모두 헛스윙 삼진을 당했지만 그에게 야유를 보내는 팬은 아무도 없었다. 수비에서는 5회부터 1루에서 우익수, 다시 9회에는 좌익수로 자리를 옮겼다.
이날 은퇴경기는 감동의 물결로 넘쳤다. 양준혁은 5회말이 끝난 뒤 구단과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18년간 국내야구를 이끈 활약을 인정받아 공로패를 받았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대구구장은 양준혁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행사가 계속됐다. 양준혁이 그 동안 세운 각종 기록을 기념하는 애드벌룬이 대구구장 상공에 떠올랐고 영구결번 선포 레이저쇼, 양준혁의 고별사, 유니폼 반납 등이 이어졌다. 영구결번은 이만수 SK 코치에 이어 삼성 구단 사상 2번째.
양준혁은 리무진을 타고 대구구장을 한 바퀴 돌면서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했고, 선수단은 선배인 양준혁을 헹가래치면서 그의 은퇴를 축하했다.
'아름다운 퇴장'을 선택한 양준혁은 "아직 체력적인 문제는 없지만 최고의 자리에서 떠나고 싶어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 그 동안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 은퇴경기를 할 수 있어 기쁘고 행복하다"면서 "앞으로는 지도자로서 제2의 야구인생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양준혁은 한국 프로야구사의 '전설'로 통했다.
1993년 데뷔 첫해 타율 3할4푼1리, 23홈런, 90타점으로 타격왕과 신인왕을 동시에 차지한 양준혁은 올해까지 18시즌 동안 통산 타율 3할1푼6리를 기록했다.
양준혁은 2001년까지 9년 연속 3할 타율을 쳤고 타격왕도 데뷔 첫해인 1993년과 1996년, 1998년, 2001년 등 4차례 차지했다.
대구=노우래기자 sport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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