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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사회, 길을 묻다] (1) 능력보다 줄대기, 공직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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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사회, 길을 묻다] (1) 능력보다 줄대기, 공직인사

입력
2010.09.1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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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요직의 길은 영남으로 통한다?… 인사편중 불문율처럼

'인사는 만사'라고 했다. 어떤 조직이고 어떤 사회든 인사 형평성과 투명성이 훼손되면 공정성 역시 의심을 받는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란 책을 통해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 즉 소득과 부, 권력과 기회, 권리와 의무, 공직과 영광이 올바르게 배분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며 공직 인사의 공정성을 중시했다.

한국일보가 19일 각계 전문가 20명으로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공정한 사회' 실현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공직 인사의 공정성을 제시한 의견들이 적지 않았다.

과연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민주당 조영택 의원실이 지난 8월 기준으로 분석한 이명박정부의 청와대 및 중앙 부처 장ㆍ차관급 출신 지역 통계를 보면 지역 쏠림 현상이 뚜렷히 나타난다. 장ㆍ차관 중에선 영남(20명, 33.3%) 출신이 가장 많았고, 수도권(14명, 23.4%) 호남(11명, 18.3%) 충청(9명, 15.0%) 강원 제주(6명, 10.0%) 등이 뒤를 이었다. 참여정부 말기인 2008년 2월 영ㆍ호남 출신 장ㆍ차관이 각 17명(29.4%)으로 똑같았던 것과 비교하면 편중이 심해졌다.

청와대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8월 기준으로 비서관급 이상 총 59명 중 영남 출신은 22명(37.2%)이고 수도권 19명(32.2%) 충청 9명(15.2%) 호남 6명(10.1%) 강원∙ 제주 3명(5.1%) 순이다.

특히 4대 권력기관이나 정부 각 부처의 핵심 보직 중 다수를 영남 출신이 차지하고 있어서 실질적 인사 편중은 더 심하다는 지적도 많다. 국정원장은 부산∙경남(PK) 출신 김성호 원장에서 대구∙경북(TK ) 출신 원세훈 원장으로 이어졌다. 어청수(PK) 강희락(TK) 조현오(PK) 등 경찰청장은 영남 일색이었다. 국세청장도 충청 출신인 한상률∙백용호 전 청장에서 TK 출신인 이현동 청장으로 바뀌었다. 검찰의 경우 임채진(PK) 김준규(서울) 총장으로 이어졌지만 검찰의 핵심 요직인 서울중앙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은 TK 출신이다.

물론 영남의 2010년 주민등록상 인구가 1,260만명으로 전체 인구(4,887만명)의 26.0%에 이른다. 영남 인구가 호남(489만명, 10.0%) 충청(495만명, 10.1%)에 비해 훨씬 많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재 50대 인사들의 출신 지역 비율 차이는 그리 크지 않으므로 인사의 영남 편중이 심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참고로 출생지별 인구 분포를 조사한 1995년 인구센서스를 보면 영남 31.1%, 호남 19.6% 였다.

또 "김영삼정부, 김대중정부, 노무현정부 등 역대 정권 모두 출신지 인사를 중용했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노무현정부 때도 호남 출신 장∙차관 비율이 20% 안팎에 이르렀던 것에 비하면 이명박정부 들어 지역 편중이 심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때문에 공정한 사회를 위해서는 인사의 지역 균형을 이루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또 여성과 장애인 등에게 불공평한 인사 관행도 조속히 시정해야 한다. 또 공정하고 투명하게 능력을 평가해 인사에 반영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정부가 생각하는 기준보다 중요한 게 국민들의 정서적 측면인 만큼 '공정성의 감정학'을 잘 풀기 위해 인사에서 지역별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권의 핵심 인사들도 최근 전남 출신인 김황식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이후 "공정사회 실현을 위해 공직의 TK 지역 편중을 시정하고 탕평 인사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어서 균형 인사 실천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이동현기자 nani@hk.co.kr

■ 특채는 '특혜 의혹' 골치… 고시는 '순혈주의' 병폐

우리사회 '공정' 논의의 한 가닥인 '행정고시 폐지 찬반론'에 불을 지핀 것은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 특채 파문이었다. 고위공무원 자녀 채용의 어두운 실태가 드러나면서 '행시 폐지는 현대판 음서제 부활'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현행 고시 제도에도 순혈주의로 공무원 사회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든 고질적인 병폐가 있다.

국민 정서상 특채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것은 공정성을 담보할 제도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고시는 빈부, 성별, 학력과 무관하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한다. 반면 자격증, 석ㆍ박사 학위를 중시하는 특채는 지방이나 서민층 자녀의 '개천에서 용날 기회'를 박탈할 가능성이 크다. 부모의 계층적 차이가 자녀의 교육 기회 격차로 이어져 결국은 직업 선택에서의 불공정성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개방형 공무원 임용 과정에선 정실 인사 등 외풍이 작용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또 각 부처가 개별적으로 특채를 하다 보니 특혜로 흘러갈 소지가 큰 데다 욕을 안 먹기 위해 '간판이 좋은' 인재를 고르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난해 채용된 특채 102명 중 89명이 박사인 점도 실무 경험이 풍부한 민간 인력 수혈이라는 당초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경제력에 관계없이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돼 온 고시제 역시 한 번 시험 합격으로 평생이 보장된다는 태생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13만여명의 고시 준비생 중 1,500명이 채 되지 않는 합격생을 배출하는 구조에선 '고시 낭인'이 속출할 수밖에 없는 점도 문제다. 이른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이 고시 합격생의 70%를 차지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무엇보다 고시를 통한 개인의 인생 역전은 '고용주'인 국민에 대한 서비스라는 공무원 채용의 본래 목적과 무관하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공채냐 특채냐의 문제를 떠나 공정성에 기반한 공무원 채용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룰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채널로 실시하는 면접 기법 개발뿐 아니라 공정성과 전문성을 갖춘 면접 위원을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선 인사위원회 부활 등 채용 공정성을 조율할 통합관리기구 마련을 주문했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는 "고시 낭인을 막기 위해 고시제와 대학 교육 연계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사 외압'을 방지하는 법령(미국) 채용의 적절성을 감시하는 독립기관(영국) 채용 시험 응시 자격 획득에 앞서 장기간 실무교육(독일) 등 선진국의 공직 채용 방식을 참고할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많다.

장재용 기자

■ 정치권 실태·과제는

정치권에서 '공정 사회'라는 잣대가 엄격하게 적용돼야 하는 분야는 각종 선거의 공천이다. 선거철이면 여야 정당은 '공정한 공천'을 강조한다. 하지만 공천 결과에 대한 불복과 탈당 등의 갈등은 일반 국민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이는 우리나라의 정당 공천이 공정성과 거리가 있다는 방증이다.

전문가들은 공천 시비를 없애기 위해서는 현역의원에게 유리한 공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현역의원들의 공천 기득권을 없애고 원외 인사와 정치 신인들의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헌ㆍ당규에 현역의원에게 선거 1년 전에는 당협위원장직을 반납하고 지역에 사무실을 두지 못하게 규정하는 등 공천 경쟁에서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며 "정당에 지급되는 국고보조금 역시 중앙당과 현역의원 위주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천 과정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룰을 만들어야 한다"며 "최근 각 당에서 공천에 활용하는 여론조사 방식도 현역의원에게 유리한 제도로 이용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계파 보스나 실세(實勢) 의원에 의해 좌우되는 공천 문화도 개선돼야 할 문제로 꼽힌다.

한나라당 공천개혁특위 위원장인 나경원 최고위원은 "공천에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특정사람에 의한 자의적 공천이 이뤄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최고위원은 "기본적으로 다수의 당원이 참여하는 상향식 공천이 이뤄져야 하고, 객관적 심사 기준을 만들어 국민의 눈 높이에 맞는 공천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계파 갈등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계파간 담합에 의해 '나눠먹기식 공천'을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

공천 심사 기준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 요즘 각 정당은 전문성과 도덕성, 지역 기반, 당선 가능성, 세대교체 등을 공천 기준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에 따른 대중성이나 당선 가능성을 강조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전문성과 도덕성을 무시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회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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