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횡행했다. 언제부턴가 그 말이 쏙 들어가고, 인문학이 인기를 얻는 듯했다. 'CEO를 위한 인문학'이 유행을 했고, 거꾸로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도 인기를 얻었다. 그런 인문학이 가능한가? 위기는 끝난 건가? 사회적 갈등과 위험이 높아진 상황에서, 그리고 그에 대한 솔직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착한 인문학'은 혹시 눈가림은 아닐까?
유행의 이면에 더 깊어진 위기
실제로 인문학은 현재 무서운 착시와 착각 속에서 생존하고 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으로부터 지원받는 인문학강좌는 그런대로 된다. 대학 안에서도 흥미 위주의 인문교양강좌는 인기가 있지만, 진지한 인문학은 오히려 더 크고 깊은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제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기이한 상황 아닌가? '착하고 예쁜' 인문 강좌들은 번성하는데, 정작 인문학의 병은 점점 깊어지고 있으니.
인문학이 죽는다고 다시 한탄하거나 호들갑을 떨자는 게 아니다. 냉정하게 보자. 지금까지 10여개 지방 대학에서 철학과가 폐지됐다. 현재 그 추세가 주춤하고 있는데, 그저 다행인가?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그 경향이 확대되어 상처가 드러나는 게 나을 듯하다. 그래야 대학에서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크게 변화하고 변신하는 계기가 올지 모른다. 새로운 변화는 오지 않은 채 위기는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 제일 나쁘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학과 이야기다. 취직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자, 철학과에 1지망으로 들어오는 학생이 급격하게 줄었다. 서너 명. 2지망과 3지망으로 학생을 받아, 겨우 명색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대학이 어중간한 수도권 대학이라서 그런 걸까? 그런 점도 있지만, 그런 것만도 아니다. 서울에 있는 중상위권 대학 철학과들도 '전공 충실도'와 '전공을 살린 취업'률을 따지면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소위 SKY도 마찬가지다.
물론 다른 인문학은 전공 지원율에서는 철학에 비교해 사정이 좋다. 그러나 취업의 관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고교와 수능시험에서 국사가 선택과목이 되어서, 역사 교직으로 나갈 기회는 크게 줄었다. 한국문학을 비롯한 문학전공도 비슷한 위험 앞에 노출되어 있다.
작가들도 죽는다고 아우성 아닌가? 학부 인문학은 일자리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면이 큰 것이다. 이 상황에서 인문학 졸업생들 다수가 학원강사 노릇을 한다. 그 일자리는 개인들에게는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사교육시장에 기생하는 일이다. 대학원은 어떤가? 이름 있는 대학의 대학원에는 연구자가 되기도 힘든 학생들이 과잉 재학하고 있다. 과잉투자와 과잉소비에 빠져 있는 셈이다.
인문학 위기는 외부에서 오기도 했지만, 내부에서도 왔다. 문ㆍ사ㆍ철이 인문학을 구성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협조와 통합은 거의 없다. 각 전공들은 칸막이를 장막처럼 쳐놓은 채, 각개전투를 하고 있다. 위기가 깊어지자 오히려 각자 악착같이 조직을 지키거나 키우려 든다.
이 상황에서 우리 학과는 자구책을 내놓았다. 전공학생 확보라는 밥그릇을 포기하고 교수들은 필요한 과목만 제공하겠다는 것. 그런데 이 제안도 다른 인문학 전공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걱정하면서, 남의 일이라고만 여긴다.
몸집ㆍ체질 바꾸기는 어렵지만
오래 존재한 지식인 인문학이 몸집을 줄이거나 체질을 바꾸는 게 쉬울 리 없다. 지금이 바로 그래야 할 상황이다. 인간 존재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말 그대로 무섭게 급변하고 있다. 인문학자들은 흔히 상품화를 탓하곤 하는데, 그럴 일이 아니다. 일자리를 제공하는 큰 몫을 시장이 하지 않는가. 어쩌면 인문학은 길고 긴 붕괴과정에 들어섰는지 모른다. 자칫하면 괴롭게 신음하며 목숨만 연명할 듯하다. 한심하고 구차스럽게.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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