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호(63) 전 홍익대 교수는 국내 대표적 도예가이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예와는 전혀 다른 작업을 한다. 조각과 회화, 심지어 건축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도예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왔다. 경남 김해의 클레이아크미술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광화문 금호아시아나빌딩의 외벽을 타일처럼 감싸고 있는 그의 도예 작품들은 당당히 건축의 일부가 되었다.
30일까지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리는 신씨의 개인전은 그의 폭넓은 작품세계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다. 호텔 로비에는 우리 전통 민화 속의 이미지들이 그려진 말들이 줄을 서있고, 수영장에는 세계 각국 사람들을 상징하는 듯한 색색의 두상들이 설치됐다.
두상에는 유독 귀가 없는데, 이는 사람들이 세상의 소음을 잠시라도 잊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또 사람 같기도 하고 말 같기도 한 상상 속의 동물들도 호텔 곳곳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다.
호텔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에 대해 신씨는 "화이트 큐브의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과 작품이 만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며 "내 작품이 사람들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호텔에는 이미 1993년 제작된 신씨의 작품 30여 점이 설치돼있다. 당시 작품들이 흙빛 그대로를 사용해 공간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라면, 이번에 새로 전시한 40여 점은 현란할 만큼 강렬한 색깔로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낸다.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적극적으로 색 작업을 해왔다.
오랫동안 색을 안 쓰면서 부딪혔던 한계에 대해 앙갚음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흙으로 형태를 빚은 뒤 유약으로 민화의 색과 이미지를 입히고 5번 이상씩 구워 만든 작품 '민화말'에는 수십개의 다리가 달려있다. "아프리카에서 본 동물들의 역동적인 질주에서 받았던 느낌을 옮긴 것이기도 하고, 건축물을 든든히 받치는 기저부이기도 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특히 그가 이번에 자랑스럽게 내놓는 작품은 호텔의 커다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평면 작업 '자유의 꽃'. 그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이른바 '구운 그림'(Fired Painting) 시리즈다. 가로 세로 50㎝의 도자판 24개를 연결해 만든 가로 3m, 세로 2m의 커다란 캔버스 위에 유약으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다.
여러 차례의 굽는 과정을 통해 흙 속에 단단하게 아로새겨진 색과 형태는 보통의 회화와는 다른 독특한 깊이감을 드러낸다. 그는 "도예 작업을 하면서 늘 크기의 제약에서 자유롭고 싶었고, 그리고 싶다는 욕망을 가졌는데 이 작업을 통해 다 풀었다"고 말했다.
"전통을 지키는 것은 옛날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게 아닙니다. 도예를 말할 때 언제까지 청자나 달항아리만 이야기하고 있어야 합니까. 미대에서도 이제 물레는 치워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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