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환절기의 라마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환절기의 라마단

입력
2010.09.17 12:30
0 0

결국 목 안에 이상이 왔다. 목소리가 대책없이 쉬고 몸을 흔들어대는 기침이 연신 터져 나온다. 몸에 열이 나고 열 손가락 끝이 모조리 무기력해진다. 서둘러 이비인후과를 다녀왔지만 여러 날, 아니 그보다 더 많은 날을 앓아야 내 목소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목이 쉴 때, 그건 계절이 환절기를 지나고 있다는 일기예보다. 나는 환절기만 되면 어김없이 인후가 예민해지고 탈이 난다. 미리미리 소금물로 목 안을 씻어내고, 잠잘 때 목에 수건을 친친 감고 대비를 하지만 환절기는 어김없이 내 목에 자신의 아픈 시간을 붉은 상처로 남긴다.

의사의 처방은 늘 한 가지다. '말을 하지 마라.' 의사는 쉽게 처방을 내리지만 말로 밥벌이를 해야 하는 사람에게 그 말은 지독한 형벌이다. 하지만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한 마디의 말을 위해 열 마디의 말을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 열 마디의 말을 위해 백 마디의 말을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내가 참 많은, 무용지물의 말을 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내가 무심코 한 말이 남에게는 칼이 되었다는 것을. 라마단은 이슬람력으로 9번째 달이니 9월, 이 환절기는 나에게 '침묵의 라마단'이다. 침묵하며 말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해 생각한다. 선방의 선승처럼 종일 침묵하고 있는 내가 어색하지만 때로는 침묵이 말 많은 술친구보다 좋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