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강마을이 추석을 앞두고 오랜만에 사람들로 술렁인다. 강아지 한 마리가 짖으면 온 마을이 찌렁찌렁 울리고 옆집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도 희미하게 들릴만큼 적요한 곳이다. 환경이 사람의 성품을 만드는 게 맞는지 여기 사람들의 품성 또한 강물처럼 느리고 잔잔하다.
며칠 전 밭에서 난 걸 나누어주러 온 이웃 아주머니는 말없이 빙그레 웃으며 가지고 온 것을 마루에 놓고 갔고, 엊그제는 어디서 기분 좋게 한잔 하셨는지 마을 아저씨 한 분이 성큼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마루에 앉았다. 우리가 이 근처에 연고가 있다는 걸 아셨는지 처남과 손위 동서를 들먹이며 긴 이야기를 시작할 태세였다.
예전보다 허덕이는 삶
내가 다른 말은 않고 지금 일하는 중이니 다음에 오시면 좋겠다고 했더니 두말 않고 얼른 일어나 나가셨다. 벌써 동네 아저씨 몇 분이 도시에서 이사 온 이웃에 대한 애정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으나 다 받아들이지 못했다. 한번 자리를 잡고 앉으면 한나절이 후딱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도 좀 매몰찼지만 번거로운 상황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약한 심사를 다잡아야 한다. 인기척이 나면 얼른 마당에 나가 응대한다던 하동 악양 마을의 박남준 시인 말도 생각났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날렵하지 못하다.
그들의 행동거지는 도시 관점으로는 좀 성가시지만 시골 입장으로는 당연한 친근감의 표현이다. 경계가 없는, 마을 주민 전체가 하나인 공동체정신의 소산이다. 농경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으며 마을의 평화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고개 넘어 끝 마을로 외부인의 유입이 적었던 이곳 도요 마을은 아직 그 전통이 살아있다.
거기에 비한다면 도시의 이웃관계는 무관심하다 못해 비정한 면이 없지 않다. 죽은 지 며칠 지나 발견되는 노인들,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어 살인에까지 이르는 일도 있다. 시골 같은 형제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웃으로서의 정리(情理)는 있어야 하는데 그걸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50년 넘게 부산의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지만 나 역시 이웃에 대한 기억은 1970년대 중반쯤까지다. 몇 집 건너 동무들, 몇 집 건너 이웃 아줌마 아저씨들 얼굴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때의 이웃들은 30년 세월이 지났어도 우연히 마주치면 알아볼 것 같지만 그 이후의 이웃들은 그다지 떠오르는 얼굴들이 없다. 다 꼭꼭 문을 닫고 살아서일 것이다. 그것은 또 급격한 경제성장 시기와도 겹쳐진다. 급성장에 온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우리는 동행하던 이웃들 손을 다 놓쳐버렸다.
그것은 같이 가기 힘든 두 마리 토끼였을 것이다. 뿔뿔이 흩어져 파편화된 오늘의 삶은 애초에 인간이 꿈꾸었던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지표상의 살림살이는 나아졌지만 우리는 예전보다 많이 무언가에 허덕이며 살고 있다.
시골마을의 시간은 무척 느리게 간다. 도시에서만 50년 넘게 살아온 내게는 특히 밤 시간이 더디게 간다. 해가 지면 정적에 싸이는 마을은 어슬렁거리며 걷는 몇 마리 개와 맹렬하게 짝을 부르는 벌레들 말고는 모두 일찍 잠에 골아 떨어진다.
아직은 희망이 있다
처음 며칠간 나는 그 적요가 무척 불편했다. 반백년 넘게 나를 잠재운 것은 적당한 소란과 소음이었다. 시멘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급한 발자국 소리, 주정꾼의 고함, 자동차 소음…. 그런 파열음에 익숙해진 귀는 자연의 적요를 오히려 불안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은 곧 역전되었고 이제 도시에 나와 있으면 몸과 마음이 편치 않다.
다시 돌아온 추석 연휴에는 또 전국의 고속도로에 긴 정체가 이어질 것이다. 귀향은 소진한 에너지를 충전하러 가는 일과 다르지 않다. 처음을 그리워하고, 처음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귀소(歸巢)본능이 있는 한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최영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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