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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박지은 '궁륭산 정복' 열병도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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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박지은 '궁륭산 정복' 열병도 막지 못했다

입력
2010.09.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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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바둑 간판스타 박지은(27)이 또다시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지난 14일 중국 쑤저우 궁륭산 망호루에서 열린 제1회 궁륭산병성배 세계여자바둑대회 결승전에서 '여전사' 박지은이 호주의 헤이자자(초단)를 물리치고 우승, 상금 20만위안(약 3,500만원)을 받았다.

2004년 정관장배(개인전), 2007년 대리배, 2008년 원양부동산배에 이어 통산 네 번째 세계타이틀 획득이다. 최근에 개최된 세계여자바둑대회 세 개를 차례로 석권한 것이다. 또 지난 2월에는 제8회 정관장배(단체전)서 막판 4연승을 거둬 한국에 우승컵을 안겼다. 국내 여자프로기사 가운데 유일한 9단인 박지은은 이같이 뛰어난 활약으로 지난 수 년간 이창호와 더불어 바둑팬들이 뽑는 최고 인기기사 자리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대회 명칭이 특이하다. 궁륭산은 중국인들사이에서 '지혜의 산'이라 여겨지고 있는데 손무가 이곳의 병성(兵聖) 즉 '병법의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손자병법을 저술했다고 전해진다.

박지은은 이번 대회 16강전에서 캐나다 대표 리천슈를 가볍게 제친데 이어 8강전과 준결승전에서 중국의 신예강자 송롱후이와 탕이를 꺾고 결승에 올랐다. 호주 대표로 출전한 헤이자자와의 결승전은 오히려 쉬웠다. 대회 관계자들도 일찌감치 박지은의 우승을 예상했다. 사실 세계대회 3회 우승에 빛나는 관록의 9단 박지은과 세계대회 첫 출전인 새내기 초단 헤이자자의 맞대결은 애당초 균형이 맞지 않았다.

결승전 결과는 역시 예상대로였다. 최근 대국 때마다 박지은을 괴롭히는 열병으로 인해 초반엔 흐름이 좋지 않았으나 중반에 접어 들어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면서 힘의 우열이 드러났다. 결국 헤이자자의 대마를 잡고 시원하게 한판승을 거뒀다. 대국이 너무 빨리 끝나 예정된 시상식 시간까지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박지은의 이번 세계대회 우승 뒤에는 한 가지 커다란 아쉬움이 남는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박지은이 11월에 열리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지은은 당초 상비군 소속이어서 국가대표선수로 우선 선발될 가능성이 높았으나 훈련 도중 건강 문제로 스스로 상비군에서 탈퇴한 뒤 나중에 일반기사들과 함께 치르는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했으나 이민진과 조혜연에 밀려 탈락했다. 실제로 박지은은 요즘 건강이 썩 좋지 않다.

이번 대회 우승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바둑을 둘 때 계속 열이 나고 바둑공부를 한 시간 이상 하면 머리가 어지럽고 아프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어디가 특별히 나쁘다는 진단이 나온 건 아니라고 하니 어쩌면 한동안 이창호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증세 같기도 하다.

바둑팬들은 인터넷바둑사이트 댓글창에서 박지은의 우승을 축하하면서도 국내 여자바둑 최강자가 아시안게임에 나가지 못하는데 대해 많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특히 박지은이 이번 대회서 격파한 송롱후이 탕이가 모두 중국 대표선수라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크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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