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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생존사회와 공정사회의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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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생존사회와 공정사회의 복지

입력
2010.09.16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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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마스크가 내려오면 자신이 먼저 착용한 후에 동반자의 착용을 도와주기 바랍니다.' 항공 여행 도중에 절체절명의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때의 생존 요령이다. 스스로를 먼저 돌본 후에 나중에 약한 사람을 도우라는 말이다. 이러한 생존의 논리가 비상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60년 동안 절대 빈곤에서 현재와 같은 발전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생존사회의 논리에 따라 살아왔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규칙에 따른 경쟁 넘어서야

1960년 대, 가장 똑똑한 아이를 교육시키기 위해 다른 형제들이 일을 하며 그의 학비를 마련하던 우리의 가족사가 그렇다. 1970년 대, 대기업의 수출 증진을 위해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억압적인 노사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다 같이 살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논리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오히려 지금은 이기는 자만 살아남는다는 경쟁의 논리가 기업과 학교 등 사회의 운영 원칙이 되어 버렸다. 이제 우리 사회는 힘센 자만 살아남는 생존사회가 되었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국정 기조로 공정사회를 제시하면서 그것의 의미에 대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더불어 장관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하고, 외교통상부는 장관 딸 특채 사건으로 일대 혼란을 겪고 있다. 힘 센 사람들이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렇다면 공정사회는 강자든 약자든 모두가 게임의 규칙 대로 경쟁하면 이루어지는 것일까? 규칙에 따른 경쟁이 공정사회의 기본 원칙이라면 결국 힘 센 자만 살아남는다는 점에서 생존사회와 다를 바가 없다. 공정사회에는 규칙의 준수 말고도 중요한 원칙이 몇 가지 더 있다. 기회균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이다.

설명하기 쉬운 예가 케이크 자르기이다. 공정하게 케이크를 나누려면 누가 먼저 선택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케이크를 자르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먼저 선택하든 나중에 선택하든 상관없게 케이크를 정확히 반으로 나눈다. 나중에 선택하는 사람이 자신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선택할 기회가 있어야 하고, 약자 혹은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을 배려하고 보호하는 것이 공정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정성에 대해 현대적 논거를 제시한 하버드 대학교수 존 롤스의 논리도 근본적으로는 케이크 자르기와 다르지 않다. 그의 이론에서 말하는 '원초적 상태'는 케이크를 나누어야 하는 가상적 상황을 말하고, '무지의 베일'은 누가 먼저 선택할지 모르는 상황을 의미한다.

따라서 공정사회는 불평등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약자를 보호하고 모두에게 실질적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이다. 이러한 원칙들을 실현해 나가는 제도적 틀이 복지국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복지국가는 전형적인 생존사회의 논리에 따라 만들어졌다. 빈곤층 노인 장애인보다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종사자를 위해 연금과 의료보험이 먼저 도입되었다. 다 같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부터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사회적 약자 돌보는 보편적 복지

나는 이 같은 우리나라 복지체제를 발전형 복지국가라 부른다. 한국에서는 복지가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동안 복지제도가 확대돼 온 것도 사실이지만, 거꾸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불평등과 양극화 현상을 겪고 있다. 여전히 연금 의료보험 실업수당 사회서비스 등에서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정규직은 대부분 사회보험에 가입해 있지만, 비정규직과 기타 직업군의 가입률은 턱없이 낮다.

보편적 복지가 공정사회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공정사회에서도 복지로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약자들이 자신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과 일할 기회를 함께 주어야 한다. 이것이 공정사회가 필요로 하는 복지국가이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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