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일하란 말이냐." 유럽의 9월이 성난 노동자들의 시위로 물들고 있다. 유럽 각국이 연금문제 해결을 위해 정년연장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프랑스(60세→62세) 등에서 노동자들의 반대가 극렬하다. 우리로선 더 일할 수 있게 해준다면 환영할 일이나 유럽의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
정부는 정년연장을 앞세우지만 감추고 싶은 진실은 정년을 연장해 연금 지급시기를 늦춘다는 것이다. 유럽의 각국 정부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정년연장에만 초점을 맞춰 홍보한다. 물론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나라들이 연금기금 안정화를 위해 고육지책을 선택한 측면은 있다. 그러나 평생직장 개념도 사라져 언제 직장에서 내몰릴지 모르는 노동자에겐 정년연장은 연금 없는 '독배'에 불과하다.
직장에서는 일찍 쫓겨나고 연금수령은 늦어져 소득없이 지내야 하는 시기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제도가 나라마다 다르긴 하지만 공식 은퇴연령을 채우지 못할 경우 연금이 깎이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조기 은퇴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블루칼라들에게는 더 가혹하다. 대부분 저소득층이어서 이들이 겪을 어려움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도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유럽은 나은 편이다.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미국에서도 현재 66세인 은퇴연령을 70세로 올리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주식 투자로 운용되는 연금이 깎여 수령액이 대폭 준 상태에서 연금 지급시기까지 늦춰지면 미국의 노동자들은 더 딱해질 수밖에 없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연금재정 빚을 후세에 넘길 수 없다는 데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정년연장 카드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계층이 저소득층이라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우리에게도 연금 대책이 강 건너 불이 아닌 만큼 긴 안목이 필요할 것이다.
채지은 국제부 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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