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회(83) 서울대 명예교수가 15일 2010년도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 헌정대상자로 선정됐다. 허 교수는 1970년대 통일벼를 개발해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쌀 자급자족을 실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그는 이 기쁜 소식조차 들을 수 없는 형편이다. 지난해 뇌졸중으로 쓰러져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두철미한 학자이면서 엄한 스승이세요. 한참 휴일도 없이 연구하실 땐 술담배도 끊으셨어요. 제자들에게 본보기가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신 분입니다. 좋은 소식을 직접 듣지 못하셔서….”
김광호 건국대 명예교수는 스승의 선정 소식에 기쁨보다 안타까움이 더 큰 듯 했다. 허 교수는 국내 벼 육종기술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됐던 서로 다른 품종간 ‘삼원교잡’으로 통일벼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동남아시아 벼 품종인 인디카는 쌀알이 길고 가늘다. 병에 강해 수확량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선 못 자란다. 당시 국내에선 쌀알이 둥근 자포니카를 재배했다. 일본과 인도에선 인디카와 자포니카를 교배해 두 품종의 장점을 가진 새 품종을 만들려 했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김 명예교수는 “선생님은 단순교배 대신 인디카와 자포니카를 교배해 나온 1세대 자손을 다시 인디카와 교배하셨다”며 “거기서 나온 자손 중 양질을 골라 통일벼로 육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삼원교배 덕에 통일벼는 병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으면서도 국내 기후에서 재배가 가능해졌다. 특히 통일벼 개발로 우리나라의 단위면적 당 벼 수확량이 일본을 넘게 되자 일본 학계에서도 깜짝 놀랐었다고 한다.
품종 개발이 이어지면서 통일벼는 1970년대 후반부터 재배가 중단됐다. 하지만 통일벼를 근간으로 개발된 후속 품종들이 1980년대 중후반까지 우리 식탁에 올랐다.
허 교수는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에 32년간 몸 담으면서 벼 육종 연구와 후학 양성에 헌신했다. 한국작물학회장과 한국육종학회장, 아시아-오세아니아육종학회와 국제벼유전학회의 상임이사를 지냈다.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은 탁월한 업적으로 국가발전과 국민복지 향상에 기여한 과학기술인을 기리기 위한 사업으로 지금까지 허 교수를 포함해 총 27인이 헌정됐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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