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 298, 299, 300!”
15일 오후 서울역을 떠난 KTX 열차가 광명역을 통과한 뒤 이내 최고속도를 향해가자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전광판 속도계를 바라보며 속도를 읽어 내려갔다. “놀랍고(amazing) 훌륭하다(wonderful)”며 연신 KTX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1박 2일 짧은 방한 동안 분 단위 스케줄을 소화할 나올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잡은 그가 이날 ‘무려’ 80분을 투자해 KTX를 탄 건, 이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KTX의 성능을 체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캘리포니아주 고속철도 사업 발주를 앞두고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한국 고속철도를 직접 타보기로 한 것. 그래서 코레일은 주지사 일행을 위해 KTX 특별 편성을 마련해, 서울역에서 천안아산역을 왕복하는 시승편을 제공했다.
시승 도중 객실에서 이뤄진 간이 기자회견에서 슈워제네거 지사는 “한국 철도의 속도와 효율성에 큰 인상을 받았다”며 “한국 업체들이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입찰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또 “캘리포니아주에는 한인이 40만명이나 살고 있다”며 “캘리포니아와 한국은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승 행사 동안 조종석 등 KTX 열차 내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한국의 고속철도에 큰 관심을 표시했다.
동아시아를 순방 중인 슈워제네거 주지사에게 사실 이날 시승은 세 번째 ‘고속철 윈도쇼핑’이었다. 앞서 그는 12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고속철도 허셰(和諧)호를 시승했고, 14일 일본 방문 때는 신칸센(新幹線)을 탔다. 이날 KTX까지 시승을 마쳐,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사업 진출 후보국인 한중일 3국의 고속철도를 모두 체험했다.
최근 미국은 철도에 대한 투자를 늘리며 예전의 서부개척시대와 같은 ‘철도 르네상스’를 계획하고 있는데, 특히 그 중에서도 캘리포니아주가 고속철도 사업의 선두주자다.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사업은 총공사비가 430억달러(약 49조 9,00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규모. 새크라멘토와 로스앤젤레스, 샌디에이고까지 1,250㎞를 고속철도로 잇는 구상이다. 내년 중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2012년 발주가 예정돼 있다.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사업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이미 고속철도를 상용화한 나라들이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미국 진출에 성공하면 앞으로 다른 국가로의 진출에서도 매우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어, 캘리포니아 수주전은 국제 고속철도 업계의 향방을 좌우할 분수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KTX는 이번에 ‘터미네이터’를 태운 기세를 몰아, 반드시 캘리포니아까지 달린다는 구상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시승행사 내내 슈워제네거 주지사와 동승하며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사업에 공을 들였다. 정 회장은 고속철도 차량 제작업체인 현대로템이 KTX 운용을 통해 높은 기술력을 축적한 사실을 소개하며 “현대로템이 이러한 캘리포니아주의 고속철도사업에 적극 참여하고자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도 세일즈외교에 동참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슈워제네거 주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우리나라는 프랑스에서 고속철을 도입했으나 단기간에 자체 기술을 개발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경제성이 높은 만큼 우리나라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말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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