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제빵왕 김탁구’의 주인공 김탁구(윤시윤)는 빵 만드는 예수다. 그는 거성그룹의 오너 구일중(전광렬)의 아들이지만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자랐고, 아버지처럼 제빵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으며, 자신을 박해한 사람들을 용서한다.
구일중의 시대엔 여자란 모름지기 아들 낳고 조신하게 사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의 본처 서인숙(전인화)은 거성그룹을 차지하려다 시어머니를 죽게 하는 등 악행을 벌이고, 그녀의 큰딸 자경(최자혜)이 아무리 똑똑해도 경영권은 넘볼 수 없다. 반면 김탁구는 자경에게 경영 참여를 제안하며 용서와 화합을 끌어내고 새 시대를 연다. ‘제빵왕 김탁구’에서 시대의 변화는 제도나 사상이 아닌 지도자의 변화다. 새 지도자의 희생과 용서가 과거의 죄를 씻어내고 새 시대를 여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시대극의 필수요소인 고증은 허술했지만, 우리가 지나온 시대를 함축적으로 보여줬다. 김탁구가 단 2년 만에 뛰어난 제빵사가 된 것처럼 우리는 지난 시절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김탁구처럼 살았지만, 누군가는 서인숙처럼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김탁구는 성장 제일의 시대를 산 사람들의 죄를 사하는 그 시대의 예수인 셈이다.
김탁구는 개발과 성장이 중요했던 시절에 이상적으로 묘사되던 지도자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민적이고, 논리적 설득보다는 “부딪쳐서 해낼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겁니다” 같은 ‘하면 된다’ 정신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결국 ‘제빵왕 김탁구’는 시대의 변화를 말하지만, 역설적으로 1960~80년대의 시대 정신을 다시 불러온다. 제도도, 정치 철학도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시대의 이상을 완벽하게 구현한 지도자가 세상을 바꾸고, 그 시대는 계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50%에 가까운 시청률, 즉 두 집 중 한 집이 이 드라마를 봤다는 사실이 그 시대에 대한 향수의 발현으로 읽히기도 한다. 우리는 과정 묘사는 거의 생략한 채 스승 팔봉(장항선)의 최고의 빵인 ‘봉빵’을 만들어내는 김탁구의 성장에 환호했고, 그가 모두를 용서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한 명의 초인적인 지도자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그 순간 과거는 사라진다. 과거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없다. 성장은 계속된다. 그리고 지도자는 우리 모두를 배불리 먹일 것이다.
우리는 김탁구처럼 좋은 지도자만 있다면 그 시절을 그대로 반복할 수 있다고 믿고 싶은 건 아닐까. 물론 이것은 판타지다. 그걸 모를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판타지에 열광한다. 16일 종영을 앞두고, 이 재미있는 드라마의 성공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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