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대화보다 말싸움이 흔하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잘못을 따지려는 문화가 지배적인 것이다. 어렵게 마주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사이가 좋아지기보다 나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 배배꼬인 실타래를 풀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 대화의 본질적인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부모 상담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자녀교육과 관련해 위험천만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보지만 완강한 저항에 부딪친다.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도 아닌데 좀처럼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자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진단검사 결과를 보여주며, 생각이 잘못됐음을 진지하게 설명해도 여전히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직접 자신의 자녀를 보면 분명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하며 설득에 나선다. 상담을 시작하기 이전에 가졌던 자녀에 대한 생각을 시종일관 고집한다.
이러면 상담은 대부분 실패로 끝나게 된다. 아이에 대한 처방을 결정하기 전에 필요한 최소한의 합의, 다시말해 아이의 상태에 대한 파악과 이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설령 표면적으로 합의가 됐다 해도 처방은 대부분 효과를 보지 못한다. 보통은 처방이 잘못됐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주어진 처방을 제대로 따르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훨씬 많다. 알고 보면 아이가 전문가의 처방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일방적인 지시를 거부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결과적으로는 처방대로 된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전에는 대화를 잘했지만 점점 이를 거부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대화는커녕 서로가 피한다고 보는 게 맞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는 생각을 갖게 돼서다. 부모의 주장이 워낙 강하니 점점 대화와 멀어진다. 그리고 빈번히 대화에서 서로의 주장을 확인하는 선에서 그치고 만다. 부모와의 대화를 꺼리는 아이들의 공통된 반응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있다. 아무리 이야기 해도 부모의 생각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대화를 계속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드물지만 부모에게 점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상의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아이들도 있다. 부모를 대화의 파트너로 적극 활용하는 경우인데 대화를 통해 얻는 게 있다는 생각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혼자만의 노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를 놓고 고심하다가 결국 부모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을 때 부모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냐가 중요하다. 아이 입장에서는 어렵게 말문을 열었지만 대화를 할수록 난처해지는 경험을 한다. 혹 떼려다가 혹을 하나 더 붙인 듯한 느낌을 갖게 되면 대화는 단절된다. 반면 부모님과 이야기하면서 도움된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대화의 빈도는 잦아진다. 대화 자체가 즐거운 과정이어야 한다. 의도를 숨긴 채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지지 않으려는 대화는 피해야 한다. 서로가 몰랐던 사실을 공유하고 솔직한 감정 표현을 통해 공감대를 넓혀가는 방식으로 대화한다면 자녀교육은 쉬워진다. 보통은 부모 입장에서 다른 집 아이처럼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불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사실 그런 아이의 모습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대화 단절에 기인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봐야 한다. 문제를 일으키면 아이를 탓하고 야단을 치지만 사실 아이를 그렇게 만든 원인 제공은 부모가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열심히 노력하는 옆 집 아이를 보면서 부러워하고 그렇지 못한 자신의 아이를 나무랄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자녀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 급선무다.
아이를 어떻게 더 빨리, 더 많이 공부시킬 것인지 궁리하지 말자.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단기간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길게 보면 아이들 대부분이 무리한 공부에 지치고 포기하고 낙오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대화 단절로 인한 피해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부모와 아이 사이의 대화는 부모의 생각을 주장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대화는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생각을 모아 보다 나은 결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주장과 생각이 모이고, 다듬어지면 서로가 만족하는 합의에 도달한다.
아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그 의견을 존중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아이 입장에서 도움이 될 만한 의견을 낼 것인지를 고민하자. 대화 과정에서 아이가 겪는 감정에 공감하려고 노력한다면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부모를 대화의 파트너로 생각하는 아이들이 공부를 못할 확률은 부모와의 대화를 포기한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할 확률과 비슷하다.
주장하는 부모는 고전하지만, 합의를 위해 노력하는 부모는 자녀교육에서 행복을 느낀다.
비상교육 공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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