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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전의 문화재 다시보기] <50> 성거산 천흥사범종(聖居算 天興寺梵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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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전의 문화재 다시보기] <50> 성거산 천흥사범종(聖居算 天興寺梵鐘)

입력
2010.09.14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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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옛 범종 가운데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종이 천흥사 범종이다. 이 종은 높이 1.68m의 비교적 큰 종으로 현재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3층 금속공예실 중앙홀에 전시되어 타 전시유물을 압도하고 있다.

지금은 법등이 끊인 천흥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는데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성거산 기슭에 있었다. 애석하게도 언제 폐사되어 없어졌는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조선 초에 들어와 억불숭유 정책의 결과가 아닌가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성거읍 천흥리라는 행정구역 명칭을 보아도 천흥사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천흥사 터에는 현재 보물 제354호로 지정된 5층 석탑과 보물 제99호로 지정된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있고 일제강점기 때 이곳에서 출토되었다는 천흥사 금동관음보살입상이 현재 성거산 중턱에 있는 만일사(晩日寺)에 보존되어 있는데 뒷면에 새겨진 글자를 통해 고려 목종 5년(1002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같이 성거산 천흥사는 법등이 끊어졌지만 천흥사와 관련 있는 중요유물이 존재하고 있고 더구나 80년대 후반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의 지속적인 조사에 의해 天興寺(천흥사)글자가 새겨진 기와편이 다수 수집되어 이 위치에 고려시대 천흥사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천흥사 종에는 聖居山天興寺鐘銘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日(성거산천흥사종명통화28년경술2월일)라고 새긴 명문이 종의 몸통에 새겨져 있어 이 종이 고려 현종이 즉위한 해인 1010년에 만들어졌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천흥사종이 어떻게 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가?

지금까지 이 종에 대해 알려져 있는 모든 자료를 취합해서 보면 천흥사가 폐사되고 난 후 이곳 저곳의 사찰로 옮겨져 사용되고 있다가 인조 때 남한산성이 축성되고 난 후, 산성의 시각을 알리기 위해 성내에 종각을 마련하고 옮겨 사용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909년 11월에 순종이 창경궁에 이왕가박물관을 개관했는데 이 종을 한일병합이 있기 1개월 전 일본인 요시다(吉田九助)가 1910년 7월28일에 이왕가 박물관에 팔았다.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집어 삼키기 전인데도 남의 나라 문화유산을 임의로 처분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1938년 덕수궁에 이왕가미술관을 건립 개관하면서 이왕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던 미술품과 이 종이 이곳으로 다시 옮겨 전시 되다가 광복을 맞이했다. 광복 후에도 덕수궁미술관에 그대로 전시되어 오다가 1969년 덕수궁미술관이 문을 닫으면서 소장하고 있던 모든 유물이 국립박물관으로 이관되었다.

조선 인조 때 축조된 남한산성(사적 제57호) 중심에 마련된 종각에서 성안의 백성들에게 시각을 알려주던 인연으로 이 천흥사 종이 다시 부활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즉 산성내 종각을 다시 건립하여 새롭게 천흥사종 형태로 만들어 중요 행사 때면 타종할 예정이다. 이 계획이 2011년에 완성되면 남한산성에서 천흥사종 형태의 새로운 종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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