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정부가 밝힌 대북 수해 지원 규모는 당초 공언대로 100억원 수준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면서 정부는 17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접촉을 갖자고 북측에 제의했다. 북측이 이날 정부의 제안을 모두 수용하면서 남북관계가 ‘인도주의’를 매개로 빠르게 대화 국면으로 진입하는 형국이다.
유종하 한적 총재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구호물자 품목은 쌀 5,000톤, 시멘트 1만톤, 컵라면 300만개, 의약품 등이다. 쌀과 시멘트, 중장비를 달라는 북한의 요청에 대해 어느 정도 구색은 맞춘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100억원 한도 가이드라인을 지키면서 ‘플러스 알파’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쌀과 시멘트를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각각 약 80억원과 7억원. 기타 지원 품목의 구매가를 다 합쳐도 100억원 안팎이다.
정부가 대북 지원 규모를 최소화한 것은 그 동안 일관되게 주장해 온 ‘인도주의’와 ‘긴급구호’라는 대북 지원의 두 가지 명제를 충족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유 총재는 “신의주 지역 수재민이 약 8만~9만명에 이르는데 (쌀) 5,000톤은 10만명을 기준으로 할 때 100일간, 20만명일 때 50일간의 식량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긴급구호의 성격인 만큼 5,000톤이면 아사자 방지 등 발등의 불을 끄는 분량으로 충분하다는 얘기다.
정부 당국자도 “(북한과) ‘대화의 물꼬’는 텄지만 ‘제재의 둑’까지 무너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수해지원 역제의, 대승호 송환, 이산가족 상봉 제의 등 북한의 잇단 대화 공세가 긍정적 흐름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면서도 “그렇다고 북한이 (천안함 사태가 해결됐다는) 잘못된 신호로 오인할 만큼 대규모 지원을 고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주목할 점은 “대북 퍼주기는 없다”는 정부의 기존 원칙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사태 이후 처음으로 남북 당국이 머리를 맞댈 대화의 장이 마련됐다는 사실이다. 북측이 이날 하루도 안돼 수해지원과 이산가족 상봉 문제에 신속하게 화답한 것은 대화 재개를 위한 적극적 의지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17일 열릴 남북 적십자간 실무접촉은 향후 남북관계의 본격적인 ‘해빙’ 여부를 가늠할 첫 번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명목상 북측이 제안한 추석맞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실무 절차를 협의하는 자리지만 남북은 각각 추가 카드를 들고 협상에 임할 가능성이 크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당장 북측이 우리가 원하는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문제에 전향적으로 나올 경우 판문점 연락 채널 복원,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관계 경색으로 단절됐던 각종 인도주의적 협력 사업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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