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는 매우 어리석었고 장성하여서는 병이 많았네’(生而大癡 壯而多疾)
‘중년에는 어찌 학문을 좋아했으며 말년에는 어찌 벼슬에 올랐던고’(中何嗜學 晩何叨爵)
퇴계 이황이 자신의 삶을 직접 정리하며 썼다는 자찬(自撰)묘비명 탁본의 앞 구절이다.
성균관대 박물관은 13일 ‘조선 전기 신도비전’을 열어 조선 전기 신도비(神道碑) 탁본 30종을 처음 일반에 공개했다. 신도비는 정2품 이상 사대부가 숨지면 일반 묘비와는 별도로 그가 살던 마을 입구 등에 비석 형태로 세워 묘가 근처에 있다는 걸 알리는 역할을 했다.
김대식 성균관대 박물관 학예실장은 “신도비는 망자를 기리기 위해 후세들이 좋은 어귀만 써준 게 보통인데, 퇴계는 신도비를 세우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한 대신 자신이 직접 스스로 삶을 정리하는 글을 남겨 비를 세웠다는 점에서 특이하다”고 말했다.
12월 13일까지 석 달간 열리는 기획전에는 태조 태종 세종 등 국왕 신도비 4종의 탁본을 비롯해 황희, 율곡 이이, 한명회, 김종직, 이현보, 조광조, 김성일 등 조선을 대표하는 고위 관료 등 유학자 신도비의 탁본이 전시된다. 특히 세종 신도비는 조선 초 최고 명필로 일컬어지는 안평대군의 글씨여서 더욱 눈길을 끈다.
김 실장은 “중국에서 기원한 신도비 문화는 통일신라 때부터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고려 말 성리학 보급과 함께 크게 유행했다”며 “묘와 가까운 것은 100m 전후, 먼 것은 1㎞ 이상 떨어진 길가 등에 동남향으로 세워졌으며 큰 것은 높이만 4m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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