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FTA 큰 걸림돌 없어… 정책결정자 결단만 남아"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ㆍ62) 주한 일본대사는 일본 외무성 '코리언 스쿨'의 대표 주자로 통한다. 외교관 생활을 한국에서 시작해 한국어 연수를 했고, 잦은 한국 근무를 통해 각계각층과 두터운 친분을 쌓았다. 역대 주한 일본대사 가운데 진정한 의미로는 유일한 한국 통으로 꼽히는 이유다. 한일 양국 관계의 중요 고비인 강제병합 100년을 앞두고 지난달 5일 부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잠시 숨을 돌린 그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에서 만났다.
-35년 전 한국 첫 근무 이후 한국의 변화 가운데 가장 크게 느끼신 점은 무엇인지요.
"처음 부임한 1975년 당시 한국은 아직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야간 통행금지와 방공훈련도 있었지요. 강남 압구정동 개발이 막 시작되고, 한강을 건너는 다리도 몇 개 없었어요. 그러던 한국이 2008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3위에 오르고,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맹국이 됐습니다. 얼마 전 근무했던 쿠웨이트에서 큼직한 공사를 맡는 것은 으레 한국 기업이었지요. 일본 기업이 중동에서 일을 따내려면 한국 기업과 손잡아야 할 정도입니다. 경제ㆍ사회적 발전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일류국가가 되었다는 점에서 감개무량합니다."
-현재의 한일 양국관계는 어떤 상태라고 봅니까.
"한국 경제도 발전했지만 한일 양국 관계도 실로 역사적인 발전을 이뤘습니다. 현재 양국은 좋은 친구이고, 국민끼리의 교류도 활발합니다. 서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관계가 됐습니다. 작은 부침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성숙하고 안정된 관계에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삼성경제연구소(SERI)도 한국의 대일 관계 양상이 '극일'에서 '공진화(共進化)'로 바뀌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앞으로 상호이해를 더욱 폭 넓고 깊게 하기 위해 양국간 활발한 학술교류, 유학생 교류가 이어지길 바랍니다.
-강제병합으로 시작된 지난 100년의 마지막 대사이자 새로운 100년의 첫 대사로서 앞으로 무엇을 새로운 양국 관계의 초석으로 삼을 생각입니까.
"한 마디로 협력을 통해 협력 자체를 강화하는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제적 지위와 역할이 비약적으로 커졌고, 무엇보다 양국의 경제수준이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앞으로의 새로운 100년을 향해 양국이 협력을 통해 세계무대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많습니다. 환경보존과 자원개발, 핵 비확산을 비롯한 평화정착, 지역안보 기여 등이지요. 그 동안 이런 세계적 과제는 구미가 중심역할을 하고, 아시아에서는 일본만이 참여했지만, 이제는 한국이라는 중요한 동반자가 생겼습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양국이 동아시아를 대변해 세계적 과제에 매달릴 수 있게 된 거지요."
-기회 있을 때마다 의욕을 표해온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또는 경제연대협정(EPA)이 그런 협력의 기초가 될까요.
"물론이지요. FTA가 됐든, EPA가 됐든 양국관계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다만 현재의 국제환경에서 단순히 관세를 낮추거나 없애 재화와 서비스의 자유로운 교역을 이끄는 FTA보다는 투자와 지적재산권, 정부조달 등의 자유화를 덧붙인 EPA의 실용적 의미가 더 크지요. 양국 기업의 협력과 일본의 대한 투자가 늘고 있고, 한국 경제력도 듬직해져서 이제는 충분히 양국 모두에 이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양국 FTA의 가장 큰 걸림돌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고위 정책 결정자들의 결단이 필요할 뿐 특별한 걸림돌은 없습니다. 한동안 한국에는 일본 기업과 일본 제품이 밀려들어올까 봐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한일 양국 국민의 60% 이상이 찬성하고, 한국 대기업도 90% 이상이 필요성을 인정했습니다."
-한국의 대일 무역역조가 심각한 상황에서 당연한 우려 아닌가요.
"한국의 대일 무역역조는 한국 수출기업이 일본의 부품ㆍ소재에 의존해 온 구조적 요인에 따른 것이지만, 그것이 한일 FTA에 대한 한국민의 부정적 인식을 부추겼을 수 있지요. 다만 그런 흐름도 이제는 바뀌고 있습니다. 그 동안 일본 수출기업은 주로 구미 선진국 시장을 겨냥한 상품개발에 치중해 왔지만 앞으로는 1인당 GDP 3,000~5,000달러 수준의 신흥국 시장을 겨냥하지 않을 수 없게 됐고, 그러자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한국 부품ㆍ소재의 사용이 늘어날 겁니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농업 분야에 대한 일본의 소극적 자세가 FTA의 걸림돌이라는 얘기가 많은데요.
"그런 문제는 협상을 통해 풀어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양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윈윈 협상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어떻게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된다는 건가요.
"당장 양국 사이의 교역이 늘어나고, 건전한 경쟁을 통해 양국 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집니다. 양국 제조업의 기술력과 생산력을 결합해 공통의 규격ㆍ기준을 만들면 그것이 세계시장에서 국제기준으로 통용될 가능성도 커질 겁니다."
-아직까지 일본의 과거사 반성ㆍ사죄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한국에는 많이 남아 있고 그것이 양국 FTA를 간접적으로 가로막을 수도 있습니다. 지난달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에 대해서도 미흡하다는 소리가 있고, "한일병합은 일본의 무력에 의해 강제된 것"이라는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의 언급과도 차이가 납니다.
"간 총리는 담화 앞머리에서 '정치적 군사적 배경 아래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해 이뤄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정부의 인식은 간 총리가 담화에서 밝힌 그대로입니다."
-센고쿠 요시토 일본 관방장관은 1965년 기본조약으로 모든 것이 청산됐다는 일본 정부의 기존 인식을 일부 수정, 정치적으로 실질적 추가 보상에 나설 수 있다는 생각을 내비쳤습니다.
"65년 한일협정 당시의 상황은 극히 일부분만 관심을 끌었다고 봅니다. 당시의 기본적 사고방식은 일본이 한국에 경제협력을 행하고, 한국이 풍요해지도록 돕는 것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사죄의 기분을 전하자는 것이었지요.
일본은 무상 3억, 유상 2억, 민간 차관 1억 등을 제공했는데 지금으로서는 그리 큰 액수라고 하기 어렵지만 한국에는 긴요했습니다. 돈만이 아니었습니다. 가령 포항제철 건설에 자금면에서 협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신닛테쓰(新日鐵)가 전면적 기술협력에 나섰습니다. 또 세계은행이 경제적 효과에 의문을 표하는 가운데서도 엔 차관으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됐고, 댐이나 병원, 공장 건설 등 인프라 정비도 행해졌지요. 물론 한국의 경제발전은 무엇보다 한국민의 노력의 결과지만, 적어도 그에 협력한 일본인들은 한국의 발전에 공헌하고 싶다는 공통된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은 실제로 고통을 받은 사람들에게 직접적 보상이 이뤄지지 못한
약점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그 뒤에도 인도적 견지에서 여러 방안을 내놓았지요. 한국에 대한 사죄의 기분을 그저 말로 끝내지 않고 성의를 담은 행동으로 보이고자 했습니다."
-당장 군대위안부 문제만 해도 그렇지 않은데요.
"그 문제가 처음 터졌을 때 할머니들과 만났습니다. 과거의 상처에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실질적 보상 실현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고, 사실상 일본 정부 주도로 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됐나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불발해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간 총리 담화가 밝힌 조선왕실 의궤 등 문화재 반환 절차가 실제로 진행되고 있습니까. 대사 임기 중에는 이뤄질까요?
"제 임기가 그리 짧을 걸로 봅니까."(웃음)
-보통 3년쯤 되는데….
"일본 정부가 기본적 의사를 밝힐 경우 그렇게 긴 시간을 염두에 두진 않습니다."
-그럼 1년이면 가능할까요.
"현재 일본 국내의 필요한 절차를 밟고 있어서 구체적 시기를 밝힐 수는 없지만 그 정도면 될 겁니다."
-한일 양국관계 최대의 복병인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입니까.
"양국의 엇갈린 입장과는 별개로 대국적 견지에서 그 문제가 양국관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일본에 있어서도 독도 문제는 '북방4도' 문제와는 다르지 않나요.
"러시아와는 아직 평화조약이 체결되지 않아 두 문제를 곧바로 나란히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본질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14일 일본 집권 민주당의 대표 경선 결과가 한일관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텐데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정치 문제에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재일동포 지방참정권 문제의 해결 전망은 어떻습니까.
"그것 또한 정치 문제입니다."
-복원된 광화문과 경복궁에는 가 보셨나요. 대부분이 일제 식민지 지배 당시의 왜곡과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것인데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얼마 전에 복원된 광화문을 보고 왔습니다. 또 출퇴근 길에 삼청동을 지나며 매일같이 경복궁의 달라진 모습을 봅니다. 멋지게 복원됐습니다. 복원은 자국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는 나라로서 당연한 것이고 귀중한 문화재 복원을 통해 역사를 복원하겠다는 한국의 의지를 존중합니다."
●약력
▦1948년 12월18일 도쿄(東京) 출생 ▦요코하마(橫浜)대학 경제학부
졸업 ▦대학 재학 중 외무고시에 합격, 졸업과 함께 한국 근무로 외교관 생활을 시
작 ▦외무성 아시아국 북동아 과장 ▦주한 일본대사관 참사관, 공사 ▦주영, 주
호주 일본대사관 공사 ▦주 호놀룰루 일본 총영사 ▦주한 특명전권공사 ▦주 쿠
웨이트 특명전권대사 ▦주한 특명전권대사
인터뷰=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사진=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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