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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의 그늘' 연구조교 무엇이 문제인가/ 교수님 눈 밖에 나면 학계 '미아 신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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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의 그늘' 연구조교 무엇이 문제인가/ 교수님 눈 밖에 나면 학계 '미아 신세'로

입력
2010.09.1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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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사립대 문과계열 연구조교인 이모(29)씨는 최근 교수로부터 황당한 제안을 받았다. 미국의 한 대학 연구소에서 일할 수 있도록 추천해주겠다는 것. 그러나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그는 "중학교 올라가는 아들이 미국으로 가는데, 함께 지내면서 애를 봐달라는 제안이었다. 물론 경비는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고 어이없어 했다.

또 다른 사립대 조교로 일하고 있는 A(28)씨는 "내가 교수 몸종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마트에 가서 장을 봐 주거나 옷 세탁까지 해다 준다. 초등학생인 아들 준다고 간식을 준비하라고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교회 다니라며 인증 사진을 가져오라고 하더라"고 했다.

대학 연구조교의 괴로움 뒤에는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교수들의 전횡'이 자리잡고 있다. 교수의 연구와 수업 등을 보조하는 것이 조교의 역할. 하지만 교수들은 이들에게 지극히 사적인 일까지 요구하고 있다.

대학 조교들이 토로하는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다. "교수의 세금 고지서 일일이 챙겨서 은행까지 가야 한다" "출장 가면 집에 애가 혼자 있다며 같이 놀아줘야 한다" "자녀 방학 숙제를 도와줘야 하고 아예 내가 직접 만들어 주기도 한다" "외국에서 친한 교수가 온다고 관광가이드는 물론 숙소까지 잡아주기도 했다" "쇼핑 갈 때도 데리고 가 짐꾼 노릇을 시킨다" 등 교수의 '조교 부려먹기' 행태는 다양하다.

이 같은 교수의 전횡이 가능한 이유는 우선 '도제(徒弟)식 교육'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사제 문화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 사립대 문과계열 교수는 "일부 대학에서 지도 교수와 제자 학생들을 두고 '○○○교수 스쿨'이라고 부를 정도로 교수 한 명을 중심으로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집단 내에서 교수는 학문의 지도 외에도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의 모든 것을 혼자서 결정하는 구조"고 설명했다. 또 다른 교수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처럼 교수의 절대 권위 아래 엄격한 지시와 무조건적 복종이 아직 대학원 내부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교수에게 집중돼 있는 현실적인 권력도 또 하나의 이유로 꼽힌다. 논문 지도와 심사는 물론 지도학생의 진로, 즉 유학 등을 위한 추천서 작성까지 지도 교수가 전담하고 있다. 각종 장학금 지급 대상자 선정도 지도 교수의 추천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수도권의 한 대학 조교 K(30)씨는 "사실상 지도 교수가 나의 대학원 생활의 현재와 미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교들이 교수의 뜻을 거역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거나 아예 지도 교수를 바꾸고자 하는 건 '학교를 떠나겠다'는 말과 같다. 졸업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학생들의 경우 지도 교수에 밉보이면 설사 학위를 받더라도 그 세계에 발을 붙이기가 쉽지 않다. 고려대 정경대학의 한 조교는 "워낙 바닥이 좁아 찍히면 이 학교뿐 아니라 같은 전공의 학계 전체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고 했다.

해당 교수들은 조교들의 불만에 "관행이자 또 다른 학습 방식"이라고 항변한다. 고려대 정경대학의 L교수는 "채점이나 논문 자료 수집, 논문 작성 등도 결국은 공부다. 개인적인 심부름이야 말 그대로 잔심부름에 불과하지 않나"고 했다.

그러나 교수 내부에서조차 반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중앙대 사회과학대학의 한 교수는 "다수의 교수가 '내가 장학금도 주고, 유학도 보내주는 사람인데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 말이 조교지 사실상 몸종으로 부리겠다는 것인데 권위적인 교수 사회, 교수와 제자간의 수직적인 관계를 깨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강지원기자 stylo@hk.co.kr

■ 연구조교 실태는/ 하루 12시간 근무… 월 80만원꼴 대가

연구조교에 대한 정확한 집계는 없다. 다만 '교수 한 명 당 연구조교 한 명'이라는 각 대학의 규정에 비춰볼 때 6만여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 209개 대학 전임교원(정교수 부교수 조교수 전임강사)의 수는 6만3,354명이다.

연구조교의 업무는 원칙적으로 '연구보조'다. 같은 조교의 명칭을 사용하지만 학사업무를 주로 하는 행정조교와 차이가 있다. 일부 대학에서 두고 있는 교수 실습과 실험실 보조 역할을 하는 실습조교와도 다르다. 고려대 관계자는 "각 조교에 관해 임용 규정이 있으며 이에 따라 각각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근무 시간은 각 대학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고려대의 경우 주당 18시간, 연세대는 주당 9시간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교수 연구실에서 대부분 생활하는 이들은 오전 8시 출근, 오후 6~7시 퇴근하는 하루 평균 12시간 근무가 일반적이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규정돼 있는 시간은 실질적인 업무 시간으로 연구실 등에 상주하는 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다.

연구조교는 기본적으로 장학금의 형태로 근무 대가를 받는다. 거의 모든 대학은 '등록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하고 있다. 따라서 학교마다 학과마다 액수는 다르다. 연세대 행정팀 관계자는 "천차만별이지만 등록금을 초과하지 않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일을 하는 것에 비하면 매달 60만~80만원 꼴의 월급은 최저 임금(2011년 기준, 주 40시간에 월 90만2,880원)보다도 낮다.

임명은 지도교수가 지도 대학원생 중 추천을 통해 하도록 일임돼 있다. 물론 임명취소도 임명권자가 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원칙은 한 학기에 한 번씩 학과장이 추천하고 총장의 승인을 얻도록 돼 있지만 교수 추천에 따라 대부분 임명과 취소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임명 취소는 ▦학교의 명예 훼손 ▦임무 불성실로 판단될 경우 이뤄진다. 당연히 수령한 장학금은 반환해야 한다. 지도 교수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 대안은 없나? 규정업무 外 지시 제재 명문화 필요

교수 개인비서로 전락한 연구조교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없을까. 수도권의 한 사립대 교수는 "교수사회의 문화가 송두리째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조교들의 처우 문제는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들의 권리를 보장할 근거를 만드는 것부터 조금씩 문제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조교를 고용한 뒤 이들에게 규정된 업무 이외의 것을 지시했을 경우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8, 9일 이틀간 한국일보가 서울시내 유명 사립대와 국립대 10여 곳에 문의한 결과, 이 같은 규정을 가진 곳은 하나도 없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조교 업무나 임명 등에 대한 내규가 있지만 업무 외의 지시나 강요행위를 제재하는 규정은 없다. 게다가 내규는 원칙일 뿐 현실적으로 강제력이 없다"고 털어놨다.

급여의 현실화도 하나의 방안으로 꼽힌다. 미국 MIT대학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친 서울 사립대의 한 교수는 "미국에서는 등록금에다 생활비까지 포함해 매달 2,000달러 정도를 지급하고 있다"며 "연구조교의 보조 업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교수의 사적인 일까지 뒤치다꺼리하는 것을 정당한 업무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급여 현실화는 사안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서울대 인문대의 한 교수는 "유럽 역시 도제식으로 학문을 전수하는 건 동일하다. 하지만 그 곳에서는 연구 보조원(조교)을 제자가 아니라 동일한 전공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관계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조교(RA)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국민대 자유교양학부 L교수는 "미국에선 조교 업무시간이 정확히 명시돼 있고 교수 역시 철저히 따른다. 개인적인 일을 요구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며 "문제는 나를 포함해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교수들이 국내에 돌아오면 일부를 제외하곤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중앙대 사회과학대의 한 교수는 "교수 스스로가 '누구나 거쳐야 할 고행(苦行) 수준'으로 이들의 문제를 바라보는 한 어떤 규정과 제재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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